달리기를 말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라는 직업에 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받거나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 라고는 수가 없다. 자신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 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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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자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을 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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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목적은 정도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몸에 선고하는 것이다. ‘선고한다.’ 것은 물론 비유적 표현이고, 아무리 말로 선언했다고 해도 몸은 그렇게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라는 것은 지극히 실무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간을 들여 단속적, 구체적으로 고통을 주면 몸은 비로소 메시지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결과 주어진 운동량을 자진해서 수용하게 된다. 뒤에 우리는 운동량의 상한선을 조금씩 높여간다. 조금식 조금씩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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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자심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젊었을 때라면 확실히적당히 해도어떻게든 마라톤 코스를 완주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 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있었을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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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아주 적은이유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뿐이다. 시간이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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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자유로움과 활달함도 많은 경우 젊음을 잃어감에 따라 차츰 자연스러운 기운과 선명성을 잃어간다. 이전에는 가볍게 있었던 일이 어떤 연령대를 지나면 그만큼 간단하게 없게 된다. 강속구 투수의 구속이 점점 떨어져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물론 사람이 성숙해감에 따라서 자연스러운 재능의 감퇴를 커버할 수도 있다. 강속구 투수가 어느 시점부터 변화를 위주로 두뇌 피칭으로 전환해가듯이. 그러나 그러한 것에도 물론 한계가 있다. 거기에는 상실감의 안개와 같은 그늘도 어른거리게 된다. 


한편
재능이 별로 풍부하지 않다- 할까, 평범한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훈련에 의해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시켜 간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자질을 재능의대용품으로 사용하지 않을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견뎌 나가 사이에 자신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재능과 만나기도 한다. 삽을 써서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밑의 구멍을 나가다가 아주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비밀의 수맥과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경우다. 이런 경우 정말행운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같은행운 가능하게 것도 근원을 따지면 깊은 구멍을 나갈 있을 만큼 확실한 근력을 훈련에 의해서 몸에 익혀 왔기 때문인 것이다. 만년에 재능을 꽃피운 작가들은 많든 적든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것이 아닐까?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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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 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쓰는 것의)메타포이기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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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게 뒤에서부터 추월을 당해도 별로 분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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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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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심의 힘을 다했다, 참을 있는 참았다고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리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접근하는 것이다. 

만약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마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creative25 @elso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