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박사는 이코노미스트로 출발해 싱크탱크 수장, 벤처 CEO를 거쳐 콘텐트를 생산하는 ‘1인 기업가’가 됐다. 그는 청춘들에게 ‘통사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행운의 세대’라고 말했다. 삶이란 본래 안락하기보다 불편한 게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 공병호 박사는 “삼성전자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들어가봤자 부품 구실밖에 못하는 대기업보다 창업기를 막 지난 회사 중에서 직장을 고르라”고 조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서로 다르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나요?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다 다르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성세대의 무책임한 조언에 그칠 가능성이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건 대부분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단적으로 누구나 삼성전자를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대기업 들어갈 실력과 형편이 안 되면 중소기업에서 시작해야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업이 될 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교수의 꿈을 안고 외국 유학을 했더라도 모두가 명문대 교수가 될 순 없어요. 여러분이 맞닥뜨릴 현실은 광야와 같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1지망인데 1지망이 안 됐다면 2·3지망 중에서 선택하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당신은 대학을 마쳤나요? 당장 홀로서기를 해야 하나요? 취업을 얼마간 유예해도 됩니까? 스스로 자문자답하다 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나온 답이 바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가장 좋은 직업 선택 전략은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골라 그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신이 잘하는 일을 발견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현실주의자가 되라는 겁니다. 잘하는 일이 공교롭게 자신이 이미 선택한 일일 수도 있겠죠. 


해야 하는 일이 만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일을 하면서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찾아 낸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다행히 그 일이 좋아질 가능성이 커요. 어느 분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라고 하셨는데 대학 갓 졸업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어떻게 압니까? 대학 재학 중 인턴십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는 있겠죠. 나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서는 잘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일을 잘하면 보상도 크죠. 좋아하는 건 취미생활로 할 수도 있어요. 특히 예술 분야가 그렇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음악적 재능은 타고나야죠. 반면 비즈니스 쪽은 어느 정도 능력이 있고 성실하면 웬만한 자리까지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성실하게 내적 성찰을 해 보는 게 좋습니다. 과거의 좋았던 경험을 반추해 보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 식으로 말하자면 점들을 한번 연결해(Connecting the dots.) 보는 거죠. 이렇게 점을 연결해 보면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나의 경우 어려서부터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잘했습니다. 말하자면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인지 지금도 강연을 많이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만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나도 시행착오를 꽤 겪었고 상당한 비용을 치렀습니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싱크탱크 수장, 벤처 CEO를 거쳐 콘텐트를 생산하는 자영업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13년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나름대로 일종의 지적 플랫폼을 구축했죠. 그 덕에 그 후 나 자신을 상품화하고 스스로 브랜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수가 가는 길은 기회가 적어

벤처 CEO로의 전직은 실수였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뛰어들었고 얼마 안 돼 버블이 터졌죠. 그러나 그때 그런 실수를 범했기에 사람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실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기업가’로 사는 동안 여러 번 영입 제의를 받았는데 ‘실패한 전직’을 통해 이루어진 학습 덕에 유혹을 이겼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 비로소 알게 됐거든요.



   
 
젊은 날에 내가 누군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잘해야 하는 사람인지 발견한다면 그거야말로 큰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면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배제할 수 있어요. 젊었을 땐 그물을 넓게 펼쳐 던지더라도 나이를 먹으면 범위를 좁혀야 합니다. 다재다능한 사람은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잘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능력이 떨어지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무엇인가 결핍되고 절박해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지방대를 나온 것이 5~10년 후 엄청난 축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사물과 현상엔 이렇게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합니다. 빛을 받으면 반대쪽에 그림자가 생기게 마련이듯이. 전략적 마인드는 있어야겠죠. 일정 기간 구체적인 목표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능력과 더불어.


지난 8월 15일부터 내가 시를 씁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남들이 쓴 시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어요. 그동안엔 산문만 썼습니다. 그런데 내게도 시적 감흥이랄까 시인의 감수성이 있더라고요. 나의 고향 통영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또 나를 발견해 가는 거죠. 인생이란 나 자신을 발견해 가는 여행입니다. 그래서 삶엔 항상 느낌표와 물음표가 따라다니죠.


평생 종사할 일을 발견하는 과정엔 우회로가 많습니다. 젊은 날엔 누구나 지름길을 선택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길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구조적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니 평생 매진할 일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조바심 낼 필요 없어요. 그런 일을 발견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인생엔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이들을 통제하려 최선을 다해도 뜻을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 불안합니까? 고통스러운가요? 인류 역사를 통사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행운의 세대입니다. 인간이 굶주림에서 벗어난 지 불과 300~400년밖에 안 됐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공포에 떨었지만 중세의 흑사병에 비하겠습니까? 불확실성을 딛고 한 발짝씩 내딛는 게 진짜 실력입니다.


결국 관점의 문제입니다. 만만치 않은 시대에 살지만, 선인先人들이 그랬듯이 인생은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그런 관점을 스스로 선택하라는 거예요. 자본주의 시대 유행, 트렌드, 이데올로기 등 각종 상업주의에 속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여러분은 젊고, 대부분 부양할 가족도 없지 않습니까? 삼성전자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는 겁니다. 상당수의 미국 컴퓨터공학도들은 구글이나 애플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미 대기업화해 들어가 봤자 부품 구실밖에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창업기를 막 지난 회사 중에서 직장을 고른다는 거예요.

중소기업에선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에서 선택한다면 일을 많이 배울 수 있고 주목받거나 전망 좋은 분야를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 회사가 성장해 온 과정도 살펴보는 게 좋겠네요. 어디 들어가든 거기가 평생 직장이 될 가능성은 작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시대엔 종사 분야를 서너 번은 바꿔야 할 거예요. 지금 각광 받는 직업들도 그땐 사라질지 모릅니다.


사실 다수파가 몰려가는 길에서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발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늘 소수파의 관점을 견지했어요. 당연히 해야 할 것은 말 그대로 당연히 해야 합니다. 정직은 언제나 최선의 방책이죠. 사람은 성실해야 할뿐더러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했을 땐 결국 그 비용을 치르게 마련이죠. 자연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능력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변화의 바람이 거셀수록 기본을 챙겨야 합니다. 말 그대로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죠. 기업이라면 이럴 때 고객에게 본질적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대학생이라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 한번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지난 20년 뒷바라지를 했다면 뭘 해야 할까요? 난 도서관에서 몇 년 더 씨름하기보다 무슨 일이든 시작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원하는 회사가 아니면 어때요? 꼭 모두가 선망하는 직장이라야 합니까? 만일 졸업을 유예한다면 그럴 만한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대입 준비생이라면 실용적인 학문을 전공으로 택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도 경제학을 했지만 경제학보다는 통계학을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인문학은 독서로 마스터하고요.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시장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수요가 있는 학문, 더 노골적으로 말해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지식을 쌓는 게 좋습니다. 공부에 소질도 관심도 없으면 기술을 익히세요.


   
 
‘3포 세대’란 하나의 이데올로기

인생은 경험입니다. 경험은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그러나 되도록 밀도가 높은 진한 경험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 경험만 기억에 남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부침도 겪고 롤러코스터도 타봐야죠. 젊은 날에 도전하고 성취하고 그러다 넘어져 보기도 해야죠. 그래야 인생이 스토리가 되고, 그럴 때 인생의 나이테도 뚜렷해집니다.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치고올라가는 힘이 진짜 내공內功입니다. 진한 경험을 하려면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합니다. 혼까지 담아야 합니다. 양적·질적으로 투입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도 진지해야 합니다. 


삶이란 안락하기보다 불편한 게 정상입니다. 거친 쪽이 디폴트값이고 휴가가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거죠. 일종의 보너스라고 할까요? 인생은 어려운 고비를 견디면서 살아내는 겁니다. 그러니 경쟁으로부터 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젊은 날에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은퇴할 때까지 평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살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어쩌면 인생의 거의 절반을 은퇴 후 보내게 될 텐데 후회스럽지 않겠어요? 전반기엔 좀 진한 경험을 해야죠. 누군가가 어루만져 주는 힐링 같은 건 기대도 하지 마세요. ‘3포 세대’란 지식 상인이 파는 이데올로기예요. 무슨 무슨 세대라는 말에 속지도, 숨지도 마세요. 불황에도 잘나가는 회사가 있고 역경이 닥쳐도 이겨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난 여러분이 언어 공부를 더 했으면 합니다. 외국어를 더 잘했다면 나도 활동무대가 더 넓었을 거 같아요. 스펙을 쌓는 데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범용이 아니라 자신이 장차 할 일과 연관된 ‘맞춤 스펙’이라야죠.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영상 세대지만 텍스트를 많이 읽으세요. 닥치는 대로 이미지를 소비하기보다 검증된 텍스트를 읽어야 축적이 많이 이루어집니다. 읽을 때 반추를 하게 되기 때문이죠.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 틀이 없으면 남이 만드는 콘텐트나 소비하게 됩니다. 소비형 인간 말고 투자형 인간이 되라는 겁니다.


글을 써야 사고 능력이 생기고 자기 관점이 견고해집니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글을 써 보세요.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흔적은 자식과 글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SNS에라도 쓰세요.
무엇보다 좋은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한편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출처: 이필재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http://m.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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