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급력을 생각하고, 철학을 가지자. 

: 우리 개개인은 일명 ‘maker’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것을 만들고 창조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역할을 크든 작든 담당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일에 파급력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 예를 들면, 하나의 건축물, 공간이 주변 사람들의 정서와 시간과 휴식에 영향을 끼친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뉴욕의 센트럴 파크, 전주의 한옥마을이 그렇다. 이러한 건축물 혹은 공간이 생김으로써 우리는 일상 속에 새로운 형태의 휴식을 취하고, 영감을 받게 된다. 


: 생각보다 내가 하는 일의 파급력은 놀랍다. 내가 추천한 음악을 통해 친구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말 한마디로 상실감에 빠진 누군가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내가 하는 일, 행위는 그렇게 하나의 독립성을 가진 것이 아닌 개미집처럼 연결되고 연결되는 것이다. 


: 그렇기에 연결통로의 한 점으로써, 그리고 maker로써 나만의 새로운 ‘철학’을 가지길 바란다. 철학을 가지고 움직이면, 흩어져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거리가 한 가지의 재료를 통해 지어져서 멋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재료를 통해 지어졌더라도, 구성원의 철학이 통일될 때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시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다시 도시를 만든다. 

: 우리 개개인에게는 살고 싶은 도시가 있다. ‘왜 살고 싶은가?’를 고민해보면, 공간의 위대함과 함께 공간을 채우는 사람, 자연, 건축, 문화, 삶의 양식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 그렇기에,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공간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공간을 창의성 있는 문화, 사람, 양식으로 채우면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혹은 태어나는 모든 것들은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공간을 더러움, 절망 등의 요소로 채우면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혹은 태어나는 모든 것들은 절망과 욕망 혹은 원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형성될 확률이 높다. 할렘의 힙합퍼를 보아라. 힙합/농구로 출세하거나 혹은 그렇게 그 공간을 채우느냐 두 가지의 경우밖에 없다.? 

: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해보자. 생각해보면 만약 나에게 도시를 전체를 디자인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집, 내 방을 디자인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방, 당신의 집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나 고민해보라. 그것이 곧 시작이다. 

: 또 한 가지는 그 공간을 채우는 당신의 모습에 따라, 당신의 방, 집, 직장, 거주지의 모습이 결정된다. (당신은 그만큼 파급력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_


‘나’다움을 잊어버리지 않은 유연성 

: 나다움을 잊어버리지 않는 선에서 유연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지 않은 선에서 새로운 것들로 자신을 채우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발전시키는 요소이다. 

: 돌이켜보면, 잘 되는 국가, 도시는 본연의 모습에 새로움을 적절히 결합했다. 너무 새로운 것으로 채우지도 않았고, 너무 본연의 모습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적절하게 조합하고 결합했다. 

: 우리 인생도 그래야 한다. 새로운 것들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다움의 본연의 색채를 해치지 않은 선에서 말이다. 

: 아무리 아름다운 색이라 할지라도, 섞고, 섞고, 섞고 보면 결국 회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뉴욕’을 가야겠다. 

: 유럽이 지난 몇 쳔년간의 아름다움이라면, 뉴욕은 지난 몇십 년 간의 아름다움이다. 

: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선사한 뉴욕의 건축을 공부하고, 눈으로 실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혜로움으로 채워진 뉴욕의 건축과 경이로움을 실감하고 싶다. 


‘균형’이 중요하다. 

: 지식과 지혜, 지식적인 역량과 함께 감성적인 역량을 적절히 결합할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 나 역시, 지식을 추구함을 놓치지 말 것이다. 그럼에도 ‘감성’을 채울 수 있는 내 마음에 공간도 남겨야겠다.





교차로가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이 생겨날수록 그 도시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자기주도적인 삶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우연성이 넘친다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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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다양하고 재료가 통일되었을 때 도시 공간이 다이내믹하고 좋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는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유서 깊은 오래된 건물이 있는 거리고 유명하다. 보스턴 시는 이 뉴베리 거리에 신축되거나 리모델링되는 건축물의 재료를 모두 붉은 벽돌을 사용하게 규제함으로써 재료의 통일감을 보존하여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재료가 통일된다고 좋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역성이 드러나는 재료의 통일성은 일단 좋은 도시로 가는 한 가지 전략 중에 하나라는 것을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보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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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은 건축이라는 자전거의 두 바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전거가 굴러가려면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듯 건축은 기능 이외에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퀴가 필요하다. 현대 도시의 건축에서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빠른 자동차를 위한 길과 넓은 집들을 추구했지만 정작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깨우는 공간을 놓쳐 온 것이다. 계절에 어울리는 한 곡의 노래가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같이 감성을 울리는 건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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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서 어느 도시에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뉴욕시는 이 문제점들을 지혜롭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이전에는 없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때로는 제도를 바꾸고, 때로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고, 할렘을 변화시킬때처럼 때로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치사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것은 건축이나 도시를 단순히 유산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일종의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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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료가 교체되고 복원되고 사용되면서 보존되는 것이 옳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땜누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남대문이 불타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된 나무가 불에 탔다고 통곡하면서 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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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건축을 하드웨어로만 보면 그냥 보존에 치중하게 되는 반면, 소프트웨어로 보면 좀 더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말이다. 이 건물은 원래 파리의 가치역이다. 건축물은 시대를 거치면서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건축물을 더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왜 수라간에 레스토랑이 있고 경복궁이 박물관으로 사용 되면 안되는 걸까? 더 이상 건축 문화재를 박제시켜 놓고 우상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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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관계의 망 속에서 지혜롭게 해결책을 찾은 좋은 사례. ‘뉴욕 시티콥 센터’

미국의 공중권이라는 법규를 이용했다. 이는 대지의 용적률로 보아 30층까지 지을 수 있는 땅이지만 현재의 건축주가 1층 짜리 건물만을 가지고 있고 이를 부수고 다시 지을 계획이 없을 경우, 자신의 땅 위에 지을 수 있는 29층의 권리를 옆의 땅 주인에게 팔 수 있는 법이다. 지혜로운 건축가는 교회로부터 이 공중권만을 양도받아 오히려 주변 건물보다 더 눈에 띄게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일단 교회당을 멋있게 새로 지어 주었다. 그리고 교회당 지붕 위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상부터 12층 정도까지 건물을 띄워서 지었다. 이 같은 여러 노력으로 기존의 교회는 계속해서 그곳에 있을 수 있었고, 시행사는 주변 건물보다 더 높은 멋진 빌딩을 얻을 수 있었으며, 시민들은 크고 멋진 광장을 얻었고, 뉴욕시는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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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무 공간은 개방성과 폐쇄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공간이다. 다자인 방법적으로 좋은 사무 공간은 어디를 열고 어디를 닫아야 하는가가 결정한다. 좋은 사무 공간은 직원들이 큰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우리가 천장고가 높은 종교 건축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같은 원리로 사무 공간에서도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더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창의적인 사무 공간이 되려면 편하게 빈둥거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장 빈둥대는 어린이들이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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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흉측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때대로 시간은 사춘기의 가슴 아픈 실연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건축물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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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대해

: 개인의 지식적 배경에 의해서 외부 환경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간판 경관에 대한 판단은 경험하는 사람이 그 간판을 정보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장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서울 종로의 간판을 보았을 때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로 혼란스러워하지만, 라스베가스의 네온사인은 색깔 있는 조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종로의 간판 보다는 라스베이거스의 간판을 더 아름답게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 경관의 많은 부분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 특히나 풍경 속에서 사인물같은 상징적인 요소들은 사람들 개인의 인지에 따라서 크게 차이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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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이다.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사람이 모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모일 목적지가 될 만한 가게나 랜드마크 건물이 필요하고, 사람이 정주할 식당이나 카페가 필요한 것이다. 광화문 광장은 세종대왕상이나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장소이다. 하지만 바람 불고 자동차 소음이 심한 그곳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다. 특별한 거리를 만드려는 의도로 유럽처럼 돌로 포장을 한 도로는 자동차의 소음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광장은 만들었지만 별다른 콘텐츠가 없는빈 공간이기에 시위라는 행위가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이 더욱 사랑받는 장소가 되려면 세종문화회관 앞과 미대사관 앞길에 1층에 앉아서 정주하면서 광장을 여유롭게 바라 볼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생겨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세종로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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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의 누적이 하나의 건축물에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건축은 한 개인의 창작물이라는 가치를 뛰어넘어 한 사회의 결과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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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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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든 장소든 이름을 불이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맺는 첫 단추이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비로소 사람에게 의미가 결정되어지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부터 지어주고, 연애를 시작하면 자신들만의 애칭을 만들어서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부분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로 된 주소지에 살고 있다. 어느 동네를 가나 같은 아파트 이름들이다. 장소의 정체성이 점점 상실되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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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물감이 적당히 섞이면 아름다운 색을 만들지만, 너무 많이 섞이면 회색빛이 되는 법이다.



@elsoar #creative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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