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마음에 진정한 사랑이 낳은 여유와 배려의 공간과 조급하지 않는 기다림이 있기를
그것이 필요하다.


들어가며.

: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거시적인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삶의 여정 중의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 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뭔가 거창한 목적마저 있어야 한다면 시작하기 전부터 숨이 막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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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유치함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비난하거나 부끄러워 하기 보다는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까, 끝내 무엇을 만들어낼 있을까 상상해보는 어떨까요? 지치고 힘든 과정에서 오히려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주지 않을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이 그저그런 유치함이 아니라위대한 유치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할 알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유명 인사의 강변보다, 마디 단어로도 소통할 아는 어린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 언어는 자체의 학습이 목적이기 보다는 하나의 도구로서의 목적이 강합니다.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틀입니다. 지금 우리는 언어 학습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식, 어떤 것에 대해 아는 자체가 학문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공부를 머리만 있고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에 공부가 무기가 아니라 흉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 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생각하기보다 많은 사람,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있도록 하겠다는,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 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운 사람이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혼자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 시키느냐 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서 주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 공부를 많이해서 지식인은 있을지 모르지만,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모르면 지성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툼(장점)이고, 데펙투스(단점)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 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입니다.

: 라틴의 성적구분

- 숨마 라우데: 최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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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마그나 라우데: 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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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데: 우등
-
베네: 좋음, 잘했음
- ‘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남보다잘하는 거싱 아닌전보다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 ‘숨마 라우네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 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무언가에숨마 라우데입니다.
-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세상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다보면 초라해지기 쉬워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하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울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그런 사람이 번도 초라해져본 없는 사람보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진심으로 그를 위로할 있는 천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 무엇인 가에숨마 라우데입니다.


:
우리는 어떤 절대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 하고 거기에 미치면 괜한 좌절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열심히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나의최선 수도 있습니다. 공부를 항상 열심히 수만은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습니다. 이건 당연한 사실이에요.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아서 집중이 되고, 그러면 목표를 넘어서는 성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힘껏 노력했음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날도 있는 법입니다. 상반된 날은 각각 별개인 날들이 아니라 공부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기는 리듬이고 흐름입니다. 중요한 모든 과정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할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꾸준히 자기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는 겁니다.


:
안정적인 ,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 가를 있다고요. 이것은 착각입니다. “지금 사정이 여러모로 좋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일을 혹은 공부를 없어. 나중에 편안해지고 여유가 새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거야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아요. 아니,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필요가 없거나 늦을 지도 모르고요.
=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합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 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깁니다.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 어떤 공동체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능했던 것이 다른 공동체에서는 그것을 얻기 위해 엄청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본문과 다르지만 - 그래서 현지와가 중요, 문화와 팀이 중요하다. ‘유연성 중요하다.)


:
다수 종교가 국교나 그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소수 종교 신자들이나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나 탄압을 받고 있어요. 무슬림들은 유럽연합 안에서는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자유, 그들의 고유한 전통과 생활방식을 온전히 누리고 있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소수 종교의 자유가 이처럼 동등하게 보호되지 않습니다.


: ‘
우트 데스’ (저자추천: 비즈니스 후에 말을 해보자)
- “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는, 단순해 보이는 믿음 없이는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는 존립할 없습니다. 결국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고 말할 있으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상대에게 있는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있을까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요?


: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대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는 연주자나 가수가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홀로 있을 느끼는 감정이 바로 문장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
달리기 끝에서 느끼는 우울함이나 허망함과 같은 감정들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른 나를 만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거다.’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갔다가, 막상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는걸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 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
저는 우리가 있는 치열하게 달려갈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다음에 찾아오는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
그대가 있으면 나는 있습니다. 라는 로마인의 편지 인사말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라는 그들의 인사가 문득 마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족할 있다면, 내가 있다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요즘 우리의 삶이 위태롭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사실 우리의 사고가 어느새 그렇게 변해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여유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
생각: 결혼식, 장례식 상주/당사자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마음에 여유를 공짜, 자기 돈을 들여서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할애하는 만큼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겁니다.
- ‘
시제학생들의 글을 보면 문장의 시제가 대부분 과거시제입니다. 과거시제가 제일 많고, 현재시제가 일부분, 미래시제는 극히 드뭅니다. 아마도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내일은 불명확하고 오늘은 이야기하기 애매한, 그런 생각이 반영 되었을 거예요.
-
인간은 오늘을 산다고 하지만 어쩌면 한순간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와 오늘을 비교합니다. 미래를 꿈꾸고 오늘을 소모하죠. 기준을 저쪽에 두고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그때보다, 그때 사람보다, 지난번 식당보다, 지난 여행보다 어떤지를 이야기해요.

-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것도, 과거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도 행복과는 거리가 것이 아닐까요?
-
시인 호라티우스와 키팅 선생의 말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자할지 장담할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사람의 내일이 불행 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바라는지, 누군가의 가슴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르는 저야말로 진정스툴투스 에스(멍청한 !)’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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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70년이 걸렸다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하셨으니, 나는 아직 괜찮은 걸까? 하며 잠시 위안을 삼아보지만 그것도 변명일 뿐입니다. 적어도 사람 사이의 일에서 오해나 오판이 없으려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사랑으로 무장한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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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오래도록 스툴투스 에스로 남지 않으려면 멍청한 누군가가 겉으로 내뱉는 뒤에 숨은, 가슴이 하는 말에 기울여야 겠습니다.


:
아는 사람은 그만큼 보겠지만, 거기서 나아가 성찰하는 사람은 알고, 보는 것을 넘어서 깨달을 있다는 사실 아니다. 하지만 나를 바꾸는 위대한 모멘텀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한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겁니다.
- (
생각: 많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깊이 이해하며, 나의 인생의 모멘텀을 찾을 있기 때문)


:
나의 시간과 신의 시간은 다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영원으로 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영원이 신의 시간이라면 유한은 인간의 시간일 겁니다. 나는지금, 여기에서고통스러우나 신의 시간 속에서보면 그저 흘러가는 점과 같을 거예요. 그것이 현실이라면 스스로 작고 보잘 없는 존재로 사라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하고, 우리 앞에 놓인 공간을 채워갈 입니다.


: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구전 설화를 들려주셨습니다. 신은 각자에게 사람만이 연주할 있는 악보를 하나씩 주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렇기에 무엇에든 진정한 전문가(마에스트로) 되어 저만의 악보를 연주하려고 하셨어요.


#creative25 @els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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