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감각과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그리고 깊은 통찰

책을 읽다보면 ‘와-‘, ‘아...’ 라는 감탄사과 함께 자조적인 셀프 반성을 하게 하는 알랭 드 보통의 책.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이러한 감탄사와 자조적인 셀프 반성을 하는 나를 쉽게 발견 할 수는 없었다.(적어도 나에게는)

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어, 두 세 번 꼽씹어 읽고, 아프고, 용기를 얻었던 그런 느낌.

책 한권과 강하게 부딪히고 싸우며 뒹굴어서 책을 읽고나면 온 몸이 아프고, 머리가 우직끈 했던 그러한 느낌도 쉽게 받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공항에서 내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

또한, 몇 개의 나의 마음을 관통하는 문장들.

그리고 삶의 과정과 과정 속 의미를 발견하는 그의 실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항 터미널은 현대 문화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부터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 관계성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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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일수록 짐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지위와 주로 다니는 여행지 덕분에 이제는 어디에서나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눈에 자주 띄는 경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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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갈수록 가늘어지는 이 기둥들의 목 위에 400미터 길이의 지붕이 균형을 잡고 있는데, 마치 아마포로 만든 차일이 사뿐하게 얹혀 있는 듯하다. 모름지기 짐이란 이렇게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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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가 단순한 능률에 머무느냐 아니면 마음으로 느껴지는 온기 수준으로 올라가느냐를 가르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약간의 호의이다, 능력을 주입할 수는 있지만, 인간애를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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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황제를 위하여 쓴 분노에 관하여라는 논문,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하여, 존재에 푸토병처럼 따라다니는 좌절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열쇠를 잃어버리거나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열쇠가 절대 없어지지 않고, 여행계획이 늘 확실하게 이행되는 세계에 대한 믿음,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순진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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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치명적인 재난에 가까운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야만 일상생활에서 좌절과 분노 때문에 인정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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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우리가 마음속에서귀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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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풍족한 것은 대체로 가장 부유한 시민들이 부자들은 이럴 것이다 하는 대중의 통념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약탈만 해서는 절대 이런 종류의 라운지(세계화되고, 다양하고, 엄격하고, 테크놀로지에 익숙했다)를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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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대륙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할 것이다. 배우자나 자식과 다시 말다툼을 시작할 것이다. 영국의 풍경을 보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매미를 잊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보낸 마지막 날 함께 품었던 희망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두브로브니크와 프라하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해변과 중세의 거리가 주는 힘을 다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내년에는 어딘가에 별장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항구를 굽어보는 방 두 개짜리 숙소, 시칠리아의 순교자 성 아가타의 유해를 자랑하는 언덕 꼭대기의 교회, 무료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야자누므들 속의 방갈로,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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