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공학 전공자만 할 수 있던 코딩을 비전공자도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개발자만 만들 수 있던 앱을 일반인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면? 여기 전공자와 비전공자 간의 경계를 허물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코딩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이수 중이었던 이두희 대표는 어느 날 ‘재미없어진’ 학업을 중단하기로 한다. “2년만 더 다니면 박사 학위가 나오는 거였긴 하다.”며 소탈하게 웃는 이두희 대표를 마주하니, 필자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변화는 기회를 가져온다. 기회가 없어 보일 때 판 자체를 바꿔버리면 기회가 생기더라. 기존에 하던 걸 과감히 그만두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나가는 게 인생의 기회를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정말 그의 말처럼 기존의 판을 엎고 2013년 1월 새로운 판을 짠다. ‘멋쟁이 사자처럼‘의 시작이었다. 네오플라이센터에 있는 이두희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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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사자처럼’ 이두희 대표(31)


Q. 이름이 독특해서 가장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멋쟁이 사자처럼’인가.


■ 백수의 왕은 사자

생각나는 대로 지은 이름이다. 2013년 1월, 자퇴가 결정된 상태에서 ‘이제 곧 백수가 되는데, 백수의 왕은 사자가 아니겠느냐’ 해서 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사자’만으로는 심심했다. 그럼 ‘멋쟁이 사자’. 이번에는 너무 평범했다. 명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뒤에 ‘~처럼’을 붙여 ‘멋쟁이 사자처럼’으로 지었다.



Q. 이제는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는데.


■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멋쟁이 사자’

낮에는 회사 일, 밤에는 멋쟁이 사자처럼, 주말에는 하고 싶은 코딩을 한다. 코딩의 연속이지만 약간씩 다르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거리에 맞추어 기계처럼 하는 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건 ‘취미’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활동이 아닐 경우, 다른 재미가 눈에 들어온다. 오히려 난 지금 네오위즈를 다니며 버는 돈을 투자하여 멋쟁이 사자처럼을 운영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2년째 봉사활동 중인 셈이다. 나라에서 알아주지 않는 봉사활동이랄까.


Q. 왜 비전공자에게 주목했나.


■ 나도 처음엔 그들과 같았다

나는 컴퓨터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컴퓨터는 그저 게임을 할 때 쓰는 도구일 뿐이었다. 원래 꿈은 물리학자였다. 그러나 물리학과 지원을 앞둔 시점에서 선배들이 하나같이 반대를 하더라. “앞으로 100년 동안은 기초학문을 갖고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에 ‘그럼 여러 번 짧게 테스트해볼 수 있는 학문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건축은 몇 년이나 걸리는 일이었고.. 길어도 6개월 안에 앱이라는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컴퓨터 분야에서 많은 시도를 해본 후 다시 판단해보자는 생각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헌데 입학해서 보니 ‘게임’이 안 되더라. 올림피아드 출신 학생들은 저 멀리 앞서 있고, 난 컴퓨터를 못하는 학생들과 함께 뒤처져 있었다. 대학교 1, 2학년 학점이 1.97이었다. 물리학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 이 과를 지원한 건 분명 오판이었다. 컴퓨터가 좋아서 왔어야 했다. 패배감을 많이 느껴 전과를 시도했다. 그런데 또 학점이 좋아야 할 수 있는 게 전과더라. ‘이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내 운명인가보다’ 해서 3학년 때부터 그 ‘프로그래밍 국가대표’ 학생들과 같이 열심히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얘네들을 이겨야겠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었다. 컴퓨터를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악물고 의지 하나로 공부하니, 되더라.

개발자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심어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개발자는 개발을 목표로 생각하고 개발 안에서 재미를 찾지, 어느 곳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구조를 바꿔보면 어떨까.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친구들, 즉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개발’이라는 선물을 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비전공자에게 코딩을 가르쳐보자는 작은 실험이었다. 딱히 무슨 의도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집에서 보름 정도 놀다가 몸이 근질거리던 찰나였다. 한편으로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프로그래밍 교육의 보조도구가 무척 나아져 개발의 허들이 낮아진 시점이기도 했다.



Q. 코딩 교육 프로젝트 참가자 선발 과정과 그 수는?


■ 1기 30명, 2기 177명, 현재 3기 준비 중

같은 학과 최용철 친구와 둘이서 시작했다. 커리큘럼부터 짰는데 사실 준비라 할 것도 없었다. 그동안 프로그래밍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석사 과정에서 연구했던 내용을 활용하였다. 두 달간의 디자인 작업과 홈페이지 제작을 마치고 2013년 3월 내 페이스북 계정과 멋쟁이 사자처럼 페이스북 페이지에 지원공고를 올렸다. 1기 모집에는 총 220명이 지원하여 그중 30명을 뽑았다.

올해 4월, 2기를 모집할 때에는 선생님 37명과 그 제자 140명을 뽑는데 1,080명이 지원했다. 대학교별로 3명씩 선생님을 선발하여 일차적으로 스터디를 한 후 각자 자신의 학교에 돌아가 제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과정이었다. 지원자가 천 명이 넘어갈 때는 좀 놀랐다.

선발에서는 비전공자와 여성을 우대하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맛집 앱을 만들고 싶다. 앱에는 이런 기능들을 담고 싶다.”라고만 적힌 지원서는 제외하였다. 왜 만들고 싶어하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원서에서 불타는 의지가 느껴지는 분들을 뽑았다. 딱히 몇 명을 뽑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Q.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라..호기심에서 시작했다가 코딩 대중화의 선두자가 된 심정은.



■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가

‘백수가 된 마당에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한 일이 왜 이렇게 커졌을까.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 안에서도 난리가 나고 기사방송, 캠페인 등 밖에서도 난리가 났다. 기업 내부 교육에 반영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오는데, 그렇게 되면 처음 출발점과 너무 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좀 이른 게 아닌가 싶다.

현재 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먼 곳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프로그래밍 교육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그리고 멋쟁이 사자처럼 운영을 위해 사재를 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비즈니스모델도 고려하고 있다. 고맙게도 그동안 구글코리아, 디캠프(D.CAMP)오렌지연필에서 장소 후원을 해주었다. 문제는 회식비다. 많아도 한 달에 50만 원 정도가 나가겠거니 예상했던 밥값이, 3~4백만 원이 나오더라. 한참을 공부하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회식은 언제 하느냐고 묻는 학생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상을 빗나갔던 건 또 있었다. 처음부터 백지 상태의 비전공자를 선발해 가르치는 것이므로 학습 진도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격차가 컸다. 반을 두 개로 나누어 가르치다 보니 노력도 2배가 들어가야 했다. ‘이 말을 이 반에서 했나 아님 저 반에서 했었나?’ 헷갈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교육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다.


Q. 참가자 반응은 어땠나.


■ 창업한 사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

“평생 불가능할 줄 알았던 웹 페이지 만들기, 앱 만들기가 가능해서 놀랍다. 나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건 사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 안에 가득 차 있던 열망을 터뜨려만 드린 것이다. 프로그래밍해본 적 없는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점차 능력을 갖춰나가고, 만들어보고 싶어 했던 앱을 만들어내는 게 신기했다. 앱을 만드는 건 전공자들만의 영역이었는데 말이다.

실제로 창업한 분들도 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를 느꼈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내가 너무 달콤한 사탕을 준 건 아닐까. 스타트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인데, 내가 괜히 맛보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짜릿함 반, 걱정 반이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 


■ 후원자를 찾고 있어

국내 기업 중에서 이런 행사에 관심이 있는 곳이 있다면 이메일(tomato@likelion.net)을 보내달라. 후원해줄 기업을 찾고 있다.

지난 2기 때는 구글코리아에서 실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21층과 22층을 이틀간 빌려주어 해커톤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구글 사무실 안에서 ‘구글 라이프’를 즐기며 개발을 경험할 수 있던 기회였다.


출처: http://platum.kr/archives/3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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