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

지역, 환경, 사람을 함께 생각하는 실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이윤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빵집이 있다.

일주일에 나흘 문을 열고 일년에 한달 장기휴가를 간다. 이 빵집은 지속가능할까?

와타나베 이타루가 한 손에 <자본론>, 다른 손에 천연효모를 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햇수로 7년째니 지속가능함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와타나베는 이 책에서 시골에 빵집을 내게 된 사연과 이윤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 천연효모와 천연누룩균으로 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재치있게 소개한다. 특히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취업한 한 빵집의 노동 착취 현실을 고발하는 대목에서 시작되는 ‘시골 빵집의 마르크스 강의’가 인상적이다. 아버지의 소개로 마르크스를 읽게 된 그는 자본가가 가져가는 이윤의 비밀이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넘어서는 만큼의 초과노동시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와타나베의 마르크스주의 실천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생명운동 차원으로 격상된다. 원래 일본 도쿄에서 가까운 지바현에서 빵집을 열었던 와타나베 가족은 깨끗한 물을 찾아 혼슈 서남부 지방인 오카야마현 마니와시의 산골마을인 가쓰야마로 빵집을 옮긴다.

default

이곳에서 와타나베는 농약은 물론 비료도 쓰지 않는 자연재배 농법으로 밀과 쌀, 채소를 키우는 농가, 대나무로 소쿠리 등을 만드는 전통 죽세공 장인 등을 만나 순환하는 지역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와 레이철 카슨이 시골에서 <오래된 미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혁명을 외치지 않는다. 낮은 목소리로 ‘체제 밖으로의 탈출’을 권한다.

초과노동시간이 이윤의 원천임을 알게 된 그는 이윤을 내지 않는다. 자연재배한 좋은 재료를 이용해 인공 배양균(이스트)을 쓰지 않고 제대로 만든 빵을 제값 받고 팔아 빵집을 꾸려간다. 일주일에 나흘 문을 열고 일년에 한달 장기휴가를 가도 빵집이 유지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쓴 와타나베 이타루는 1971년생이다. 그는 자칭 ‘별 볼일 없는 청춘’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로 이따금 돈을 벌어 폭주족 흉내나 내며 살았다.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94년, 그의 나이 스물세살 때였다. 학자였던 아버지가 안식년을 맞아 헝가리로 가게 됐는데, 어머니가 그의 등을 떠밀어 함께 가게 됐다. 그곳에 사는 일본인들의 모임에서 그는 심한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리스트음악원에 다니는 사람, 올림픽 대표선수, 발레리나 등 다들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돌아온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로 했다. 의사였던 할아버지처럼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중학교 1학년 교과서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는 그에겐 언감생심이었다. 대신 농학부에 합격했다. 경제발전이 늦었지만 전통 식문화가 풍성했던 헝가리에서의 경험이 그를 농업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 졸업 뒤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말이 유기농산물회사지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블랙기업”이었다. 원산지 위조를 예사로 하고, 직원들은 거래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나눠먹었다. 상사의 리베이트 유혹을 뿌리치고 더 윗선에 사실을 보고했지만 돌아온 건 ‘왕따’였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도덕함을 절감한 그는 2년 만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default

시골빵집을 만든 와타나베 이타루가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다.

“시골살이나 농사를 여전히 동경했지만 눈앞에는 거대한 유통 시스템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의 논리에 농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있었다. 농업을 다시 살리려면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스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잠결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타루,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 신기한 일이었다. 제빵 기술은커녕 평소 빵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취직한 빵집에서도 그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본질에 맞닥뜨려야 했다. 새벽 1시45분부터 시작된 노동은 다음날 오후 5~7시까지 이어졌다. 주먹밥을 먹을 시간도 따로 없었다. 일하는 도중에 선 채로 먹어야 했다. 오로지 화장실 가는 시간만 허락됐다.

여기서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묘사하는 19세기 런던의 빵집을 소개한다. 지금의 모습과 거의 다를 바 없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로부터 150년이 지났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노동력을 얻기 위한 교환가치가 하루 6000엔(6만1100원)이고 이 노동력을 쓰면(노동자를 부리면) 1시간당 1000엔의 교환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치자. 자본가가 됐다고 가정하고 이 조건에서 이윤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6시간 넘게 일을 시키면 나머지는 죄다 이윤이 된다.”

그렇다면 기술이 발전하고 물자가 넘치는데도 왜 노동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가. “노동력의 교환가치(임금)는 생활비와 기술습득 비용, 자녀 양육비의 합계액”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으로 상품의 가격이 싸지면 생활비와 양육비까지 모두 낮아지기 때문에 결국 임금까지 떨어진다. 임금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가인상으로 인한 착시다. “(기술 발전에 따라)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부속물로서의 그에게는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술만이 요구된다.”(<공산당 선언>)

default

이윤의 원천이 노동자의 초과노동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와타나베는 “절대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직원들에게 현금흐름을 공개하고 있다. “이윤은 노동자가 월급보다 많이 생산하고 그만큼을 자본가(경영자)가 가로챌 때 발생했다. 그 말은 곧, 노동자가 생산한 만큼 노동자에게 정확히 돌려주면 이윤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 ‘다음번 투자를 위해 이윤은 꼭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생산규모를 키워서 자본을 늘리려는 목적 때문에 나온 말이다. 동일한 규모로 경영을 지속하는 데에는 이윤이 필요치 않다.”

그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본주의가 좋아하는 방향의 정반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상품과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파는 방법을 택했다. 인근 농가에서 자연재배 방식으로 기른 통밀을 직접 제분해 인공 이스트가 아닌 천연효모와 천연누룩균으로 빵을 만든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료는 가급적 같은 지역 것을 쓴다. 덕분에 빵 가격이 보통 빵집의 4배나 되지만 에스엔에스(SNS)와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 덕분에 판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역통화 같은 빵을 만들고 싶다. 만들어서 팔면 팔수록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지역의 자연과 환경이 생태계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되찾는 빵. (…)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 그것이 시골빵집이 새롭게 구워낸 자본론이다. 빵을 굽는 우리는 시골 변방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태동을 오늘도 느끼는 중이다.”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2014/06/09/story_n_5471149.html?utm_hp_ref=t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