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서양의 발달된 물질문명으로 동양을 농락할 수 있다고 여겼던 서양 세계를 전율케 만들었다. 

베트남 전쟁의 미국 패배는 이미 이 순간 결정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 

베트남의 고승 틱광둑이 (釋廣德Thích Quảng Ðức) 친가톨릭,친미 성향의 응오딘지엠(고딘 지엠) 남베트남 대통령의 불교 탄압과 독재 지향 정책 그리고 시위자 학살에 저항하고자 1963년 5월 29일 불교 승려들의 침묵 가두 시위가 있을 당시 틱광둑 스님이 주변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소신공양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이 사진과 영상이 특보에 호외, 속보를 타고 전 베트남은 물론 전 세계로 일파만파 전파되어 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불교 신자가 대다수인 베트남인과 응오딘지엠 정권은 반목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사상이고 뭐고 별생각 없던 사람들조차 남베트남 정권에 반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응오딘지엠의 동생 마누라의 바베큐 드립과 그래봤자 눈도 깜짝 안할꺼다 라는 등의 허세와 안드로메다적 발언은 뿌리 끝까지 부패되어 있던 남베트남 정권의 무능함에 베트남 사람은 물론 남베트남 정권을 지원하던 미국 정부까지 대폭발(…) 하게 해서 결국 미국은 남베트남 군부를 사주하여 응오딘지엠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사실 이 행위는 정권에 저항한 분신자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상에서 끝까지 가부좌를 풀지 않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틱광둑의 행동은 종교적인 열망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신공양을 감행하기 이전에 제자들에게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며,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동영상을 보면 소신공양 중에 불길이 거세지자 쓰러질 듯 앞으로 기울어졌으나,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다시 가부좌 자세로 정좌하며, 결국은 뒤로 쓰러진다.

 소신공양이 끝난 후 그의 법체는 다시 한번 소각로에 넣어져 8시간 동안 화장(火葬) 되나, 

그의 심장은 전혀 타지 않았다고 하며, 이후 남베트남 정부에서 파견된 비밀경찰이 황산을 뿌려 훼손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하며, 금속 용기에 구리줄로 봉인하여 스웨덴 은행에 맡겨졌다가 이후 하노이국립은행에서 소장중이라고 한다.


이 사진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덕분에 남베트남의 실상이 미국 대중에 알려져 착실히 베트남 파병을 준비하던 미국은 부패 독재 정권을 도우려 전쟁을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1964년 통킹만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이후에도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꼬리표는 미국을 끝까지 괴롭혔으며 뒤는 아시는 것처럼 대규모 학생이 참여한 반전 운동과 유럽의 68혁명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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