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하라 가난한 이들을

그는 어째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했을까. 21세기 가톨릭교회와 세상에 전하는 확실한 뜻이 그의 이름에 담겨 있다.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2004년 12월3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나이트클럽에 큰불이 났다.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클럽 전체를 뒤덮었다. 나이트클럽 쪽에서는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출입구를 대부분 잠가놓았다. 대목을 맞아 손님들을 많이 받은 것도 참극을 키웠다. 195명이 사망하고 700명 넘게 부상당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직장인과 젊은이들이었다.

소방차가 달려오기 전 어느 성직자가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의 추기경 베르고글리오였다. 그는 몸에 불이 붙은 채 밖으로 나온 사람의 옷을 조심스레 벗기고, 놀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현장에서 직접 부상자를 돌보는 추기경을 보며 부상자와 가족, 소방관들은 큰 힘을 얻었다. 이 모습이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AP Photo</font></div>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 포옹하고 있다.  
ⓒAP Photo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 포옹하고 있다.
이 추기경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었다. 그의 등장은 가톨릭교회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충격의 폭과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이라는 또 다른 충격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2013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본명 요제프 라칭거)는 자진 사임한다고 발표해 가톨릭교회는 물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겸손한 퇴장은 위기의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2005년 4월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했다. 2005년 4월18일 새로운 교황을 뽑는 선거가 시작되었다. 라칭거 추기경은 보수파를 대변하는 강력한 후보였다. 그에 맞서는 후보로 이탈리아 밀라노 교구의 전임 교구장이자 성서학자인 카를로 마르티니 추기경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구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있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처음 몇 차례 투표에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3분의 1 넘게 득표했다. 이는 자신이 당선되기에 부족하지만 라칭거의 당선을 막을 수 있는 표였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눈물을 흘리면서 라칭거 추기경에게 투표하도록 동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다음 날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되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조용한 성품에 부지런히 일하는 교황이었다. 그는 이웃 종교와의 대화에 애썼다. 동방정교(그리스정교회)의 분리, 개신교의 분리를 겪으면서 ‘교회 일치 운동’은 역대 교황의 주요 숙원 사업이었다.

베네딕토 16세가 2006년 말 이스탄불의 이슬람교 사원에서 기도한 것은 전 세계의 이슬람 신도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는 쾰른, 로마, 뉴욕의 유대교 회당을 종종 방문했다. ‘가장 개신교적인 교황’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신교에 친근한 자세를 취했다.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평생 애써온 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하느님을 오늘날의 인류에게 선포하려 애썼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재임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유대인 학살’을 부인한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 복귀, 바티칸 은행을 둘러싼 소문들, 사제들의 성추행, 그리고 2012년 교황청 비밀문서가 유출된 이른바 ‘바티리크스(바티칸+위키리크스)’ 파문이 그를 힘들게 했다. 그의 능력과 신뢰도에 대한 걱정이 교회 안팎에서 은밀하게 퍼져갔다. 2013년 2월11일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에서 사임하겠다고 갑자기 발표했다. “그동안 저는 하느님 앞에서 여러 번 양심 성찰을 했습니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베드로 사도직을 수행하는 걸 감당하기 힘들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게 맡겨진 직무를 더 잘 수행하기에는 제 무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로마 주교직과 베드로의 후계직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13세기 말 최초로 자진 사임한 첼레스티노 5세는 은둔하며 수도사로 지내다가 갑자기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라틴어도 할 줄 몰랐고 교회 행정도 알지 못했다. 취임 5개월 만에 추기경들과 상의한 후 자진 사임했다. 1년6개월 뒤 그는 감옥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그에 견주면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성격이 다르다.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등장부터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퇴임까지 36년간 지속된 ‘보수 교황의 시대’가 퇴장함을 의미한다. 보수적인 교황으로는 가톨릭교회가 더 이상 현대사회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유럽 교회의 퇴조는 유럽 출신 교황들에게 압박이 되고 있다. 출산이 왕성하고 새 신자가 늘어나는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는 가톨릭 신앙의 새 터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비민주성이 강한 지역들이다. 비유럽 출신 교황, 사회적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개혁 교황의 출현은 필연이다. 추기경들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인정한다. 보수적인 추기경들이 개혁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한 점에서도 나타난다. 보수파에 속하는 대부분의 추기경이 소수파에 속하는 개혁파 인물을 교황으로 뽑은 것이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AP Photo</font></div>



2013년 3월13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AP Photo
2013년 3월13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 예수회의 영향,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노동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창문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예로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는 하급 기술자의 아들로 아르헨티나 사회의 빈부격차 현실을 절감하며 자랐다. 할아버지 내외는 아들, 손자손녀의 옆집에 살았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에게 이탈리아 문화를 전수해주었다. 베르고글리오는 열세 살부터 조그만 공장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오전 7시에서 오후 1시까지 일하고, 점심식사 후 학교에 가서 저녁 8시까지 공부를 했다.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노동을 하며 나는 인간의 노력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 때 그는 공고에 진학했다. 졸업을 앞둔 열일곱 살 때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다. 사제가 되고 싶다는 뜻을 아버지에게 밝혔을 때 아버지는 행복해했지만 어머니는 실망했다. 고교를 졸업한 베르고글리오는 곧바로 신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되었다. 그는 스물한 살에 심한 폐렴을 앓으면서 오른쪽 폐 일부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그가 꿈꿔왔던 일본에서의 선교 활동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노동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고통 그 자체는 미덕이 아니지만, 고통을 만나는 자세는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지적 편력도 생겨났다. “내 마음에 종교적 질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치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산당에서 발간하는 잡지를 즐겨 읽었지요. 그러나 내가 공산주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베르고글리오는 열아홉 살 때 산살바도르 대교구 소속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3년 뒤 예수회에 입회했다. 예수회는 1534년, 스페인 바스크 출신의 이냐시오 로욜라가 창립했다. 설립 당시 루터가 주도하는 그리스도교 개혁 운동이 유럽을 휩쓸었다. 위기를 실감하고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들이 가톨릭 내부에서도 나왔다. 예수회는 그 결실 중 하나다. 예수회는 특히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벌였다. 가톨릭 내부에서는 예수회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내부에서는 쓴소리를 하는 야당이었기 때문이다. 예수회는 세속 정치 세력을 끈질기게 비판함으로써 정치권력과도 자주 충돌했다. 17~18세기에 예수회는 특히 유럽 계몽주의자들에게 미움을 샀다. 1759년 포르투갈에서, 몇 년 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예수회는 활동을 금지당했다. 예수회는 교육과 연구, 선교에 주력한다.

2013년 3월13일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새 교황 이름은 프란치스코’라고 내걸리자 여러 해석이 나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원이다. 그는 어째서 프란체스코 수도회 창립자의 이름을 택했을까. 21세기 가톨릭교회와 세상에 몇 가지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려는 뜻에서다. 첫째, 교회는 가난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둘째, 교황과 교회가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교황청은 전 지구적 대량학살 전쟁에서 무기력했다. 셋째, 교회와 교황이 세계적으로 종교 간 대화에 앞장서야 한다.

군사정권 시절 죄를 고백하는 <내 죄> 발표


1973년 베르고글리오가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3년 뒤 아르헨티나에서 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1976년 3월부터 1979년 9월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추악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시민 약 3만명이 쿠데타 세력에게 목숨을 잃거나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었다. 주교 80여 명이 모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투표 결과 반수가 넘는 주교가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하기로 뜻을 모았다. “침묵으로 상황을 주시한다.” 역사에서 비웃음을 사게 될 결정이었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AP Photo</font></div>



1973년 베르고글리오 사제(현 교황·오른쪽)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살바도르’ 학교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AP Photo
1973년 베르고글리오 사제(현 교황·오른쪽)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살바도르’ 학교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교회가 역사에서 지은 죄와 잘못을 고백하도록 제안했다. 그해 9월 아르헨티나 주교회의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주도하에 군사정권 시절 교회 인사들의 죄를 고백하는 문헌 <내 죄>를 발표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적 자유와 인권을 해친 사람들에게 너무나 너그러웠습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의 침묵을 용서해주십시오.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정치적 충돌, 자유의 말살, 고문과 감시, 정치적 박해와 사상적 강요에 참여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

베르고글리오의 활동을 규정짓는 개념은 ‘가난과 벗하는 교회’다. 군사정권이 끝나자 아르헨티나 또한 국가의 빈곤과 개인의 빈곤이 주된 쟁점으로 떠올랐다. 베르고글리오는 이런 뜻에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사제들을 칭송했고, 해방신학자들을 옹호했다. “인권은 가난 탓에 상처받고 있습니다. 테러, 억압, 살인뿐 아니라 심한 가난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때는 높은 국가 부채가 가난한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난과 관련한 문제에서 베르고글리오의 강직한 발언들은 세속 권력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통성 없는 권력이 국민의 인권을 박탈하고 반대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맞섰고, 민간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고 경제적으로 무능한 정권에 대해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는 교황 선출 직전까지도 현실 비판의 강도를 낮추지 않았다. 이러한 파괴적인 현실 앞에 국민들이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계화 경제 질서는 가난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변인이자 억압된 사람들이며 한마디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교황의 교회 개혁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가난한 교회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교회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가난한 교회를 외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맥락에서 보면 한국 천주교회 또한 재산을 줄여야 한다. 성당 신축, 성지 개발 같은 계획을 줄이거나 포기해야 한다. 교회의 수입도 줄여야 한다. 지나친 액수의 헌금은 받지 말고 돌려주어야 한다. 특히 교회는 불의에 개입된 더러운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가 유일하게 편애해야 할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09
시사IN LIVE: 김근수 (해방신학자·<교황과 나> 저자
[모든 저작권은 위에 출처에 있으며. 이 글은 단순히 블로그주인 보관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