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응원의 박수가 절로 나왔다. 전 세계 음악 영재들이 어려서부터 갈고닦은 기량을 겨루는 자리이기에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 자리까지 오르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조성진은 그를 천재라 부른 사람들에게 “난 쇼팽과 같은 천재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이같이 겸손한 그이기에 어떤 찬사든 아깝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엔 세계 최고의 자리를 빛내고 있는 천재가 많다. 특히 선구자가 돼 자기 영역의 황무지를 개척해 1등이 된 사람들이 있다. ‘골프 여제’ 박세리와 ‘피겨 퀸’ 김연아만 예로 들어도 세계인들이 느끼는 감동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 대회에서 맨발로 물속에 들어가 아이언으로 골프공을 쳐냈던 모습을 지금도 모두가 잊지 않고 있다. 김연아가 자신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일본 선수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이겼던 그 감동을 우린 기억하고 있다. 

조성진과 박세리, 김연아에겐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경쟁자들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고 있기에 기량 면에서는 이들보다 앞선 사람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 이상의 감동을 줘서 정상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쇼팽의 선율 자체를 즐기며 그 속에 담긴 풍부한 감정을 표현해 낸 조성진, 포기해야 할 듯했던 순간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갔던 박세리의 대처 능력, 스케이트가 아니라 온몸으로 곡을 소화하고 표정으로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김연아. 그들은 이미 순위 매기기를 벗어나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노래를 ‘노랫가락’이라 표현했다. 가락은 흥을 뜻한다. 클래식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조성진의 연주에서 가락을 타는 여유로운 모습이 보였다. 건반을 다루는 손과 가락을 따라 흔들리는 상체를 보며 그가 마음 깊이 쇼팽을 사랑하고 있고, 쇼팽이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읽어 그 곡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담아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술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축적된 기술 안에 ‘저절로 우러나오는 흥’이라는 자연스러움을 가미한다면 소비자는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최고의 자리에 있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박혜린 < 옴니시스템 대표 ceo@omnisystem.co.kr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02749981&in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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