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조너선 아이브에 관해 한 이야기를 듣고서 오랜 시간 그 이야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약 6~7년 전, 한 대기업이 조너선 아이브를 채용하여 새 디자인 팀을 꾸리고자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브는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그는 약 10년간 애플을 항상 염원했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고자 지난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며, 거기서 갑작스레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브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고 밝혔다고 한다 .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몇가지 사실을 통해 이 이야기가 진실임을 추정해볼 수 있다. 사실 아이브를 채용하고자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미친짓으로 보일 수 있으나, 확신하건데 지금껏 수많은 회사들이 시도했음은 분명하다. 물론, 아무도 이를 성공한 적은 없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일 경우, 2008년과 2009년 즈음 조너선 아이브가 “이제 겨우 시작이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iMac은 현재보다 약간 두껍고 매끈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맥북 프로와 맥북 에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애플 TV는 1세대였으며, 아이팟 나노는 이미 5세대가 출시된 상태였다. 그 다음 아이폰 3GS가 여름에 출시되었으며, 앱스토어의 앱은 대략 7만 5천개를 돌파중이었다. 아이폰6와 애플워치도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제품들 또한 아주 감탄할만큼 아름답다. 어떤 디자이너가 이러한 제품 중 단 하나라도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이브는 정말 ‘이제 막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브는 1992년부터 애플에서 재직하였다. 아이브가 입사하고 난 후 5년이 지 난 1997년 6월, 아래의 커버가 Wired Magazine을 장식하였다.


‘기도하라(죽어가는 애플을 위해)’


92년과 97년 사이, 3명의 CEO가 스티브 잡스가 돌아올때까지 애플을 경영하였다.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다시 본 궤도에 올렸지만, 애플은 2000년 초반까지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나는 당시 애플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힘든 환경이 단지 1~2년간이 아니라, (당시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다) 10년간 지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된 시간 속에서 아이브와 그의 팀은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역사의 한 줄기가 되었다. 아이브는 지금까지 23년간을 애플에서 일했다.

나는 아이브가 시계 디자인을 위한 아이디어와, 이를 제대로 디자인하는 방법을 고안하기까지 20년이나 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20년간, 애플과 아이브는 진짜 ‘시계’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를 만들기 위해 정말 지난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는 23년간 탁월하고 알맞은 사람을 채용하고, 옳은 팀을 구성하고, 관계를 구축하고, 스킬과 기술을 탐구하고, 제조 라인과 유통을 구축하고, 만족스러운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시간일 것이다. 아이브가 이렇게 20년간 애플을 키우고자 쏟았던 인내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다른 회사는 그저 ‘스마트 워치’를 디자인하려고 했지만, 오직 애플만이 진짜 ‘시계’를 디자인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시간


지난 3월, Path의 창업자 Dave Morin은 트위터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평균 근속 년수가 약 15개월임을 밝혔다. 출처가 정확한 정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리포트에서는 구글과 아마존의 평균 근속년수가 1년 정도에 불과한다고 하며, 애플은 2년 정도라고 한다. 물론 15개월 안에 ‘무언가’는 만들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게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아이폰이나 애플 워치 같은 제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IT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10년 혹은 5년 전, 아니 몇년 전만 하더라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곳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을 잘 알것이다. 이 기회를 찾고자 근래 등장한 모든 IT기업들이 현재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물색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화이트보드에 프로세스와 스케쥴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지금껏 이러한 것을 중점적으로 배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려우며, 꾸준히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실 기업이 어떠한 방향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과 아이디어는 수없이 존재하나, 이에 대한 상세 메뉴얼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회사는 각개마다 상황이 다르며,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그로 인해 직원들이 방향을 잡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많은 회사가 정치적 문제, 감정적문제, 엉망 진창인 프로세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회사가 제품을 만들 수록 바보같은 제품을 만드는 일에만 투자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모두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디자인 하는데만 집중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기업을 만들어 가는이야말로 당신이 이제껏 열망해왔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며, 아주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회사가 혼란스러워지면 불평하는 것,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꼽는 것, 혹은 그만두는 것이 매우 쉬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당신이 도움을 줄 일이다. 회사 안에서의 당신의 역할은 그저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역할은 당신이 열망하고자 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로 발돋움 시키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회사에 합류 했을 때, 당신이 회사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무에도 계약했으리라고는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미 여기에 사인한 것과 마찬가지다. 재직 중인 회사를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회사를 더 나은 디자인과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디자인’이 당신이 일하는 회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로써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면, 그것을 매일 증명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저 다음 3,6,12개월 후 디자인 할 제품만 생각하지 마라. 2,5,7,10년 뒤 회사에 필요한 기술(Skills), 관계(Relationships), 도구(Tools)를 고려하고, 지금 당장 이를 위해 일을 시작하라. 또한 당신 스스로를 그저 다음 프로젝트에서 나올 아웃풋만으로 측정하지 마라. 당신 스스로를 향후 10개 프로젝트 진행 시 각 과정의 퀄리티를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 사람인지로 측정하라. 그리고 당신 주변의 동료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당신을 측정하라. 문제를 봤다면, 아무도 이를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라. 더욱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자신을 투자하라. 그리하면 현재 혹은 미래의 동료들이 똑같은 문제에 직면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들이(혹은 미래의 당신이) 회사에서 우뚝 설 수 있는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집요함


내가 트위터에 입사하기 전,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4년 반 가량을 일했으며, 이전에는 노키아에서 4년을 일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할 때, 동료 중 몇명은 내가 너무 빨리 떠난다며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종종 “말년 병장, 임시직”이라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10년 혹은 15년 이상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나는 윈도우 폰뿐만 아니라 ‘메트로 디자인 언어(Metro Design Language)’를 디자인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이를 ‘행운’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를 구축하고자 한 정확한 타이밍에 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Metro 디자인의 리더 빌 플로라(Bill Flora)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9년을 일했으며, Encarta와 같은 제품을 1995년부터 설계해오며 Metro design을 구상해오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랜 시간 이러한 훌륭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빌과 같이 오랜 시간을 근무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기술 분야는 굉장히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재밌는 일거리는 사방 도처에 널려있다. 당신이 적절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회사나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며, 매주 채용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받을지도 모른다. Fast Company와 Wired는 매일같이 새로운 디자인 잡이 생성되고 있다는 기사를 특종으로 실은 바 있다. 당신은 이러한 수요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직하는 것을 매우 매력적으로 느낄 것이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995년의 아이브와 같은 상황과 인내를 겪고 싶어할까?

내가 한 회사에 20년간 머무를 수 있는 인내심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정컨데 이렇게 긴 시간 머문 사람들도 입사 초반부터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너선 아이브는 이 과정을 매우 즐겼을 것이며, 몇년이 지났는지는 이미 머릿속에서 잊어버렸을 것이다. 현재 내가 일터에서 노력을 쏟는 일은 20년 뒤 내가 가고자 하는 그곳을 향해 집중하고, 나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나는 수년 뒤 만들기를 소망하는 제품과, 이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내 팀은 어떤 역량이 갖춰야 할지 생각하곤 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내야 하는 일을 할때는 길고 긴 시간을 나 자신, 동료, 그리고 나의 팀에게 어떻게 투자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내 일터를 지속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환경이 개선되고 나면 더욱 이를 지속시켜야만 하는 이유가 끊임없이 생겨난다. 방해 요인은 지금도 계속 사라지는 중이다. 누가 알겠는가? 20년 뒤 우리가 날개를 가질 수 있을지.

당신이 현 회사에서 20년을 보낸다고 해보자. 당신은 내일 당장,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작은 것을 바꾸는데도 수년이 걸리는 법이다. 
큰 규모의 일을 하는 것은 적어도 5년, 아니면 7,8년이 걸리기 마련이다. — 스티브 잡스, 1995


출처: https://medium.com/@josephkim/%EC%A1%B0%EB%84%88%EC%84%A0-%EC%95%84%EC%9D%B4%EB%B8%8C%EC%9D%98-%EC%9D%B8%EB%82%B4-44d0e7f0d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