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 vs 홍대 우파


한국 세대 문제의 본질은 문화 전환(Culture Shift)이다.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근면, 성실, 규율, 조직력을 강조하는 산업사회 가치에 머물러 있는 반면, 20~30대 젊은 층은 삶의 질, 개성, 다양성 등 탈물질주의 가치를 지향하며 기성세대와 다른 삶의 방식과 일의 철학을 선호한다.

문화 전환의 여파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정치권이다. 여야 정파들이 경쟁적으로 탈물질주의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두드러진 성과를 올리는 정파는 진보적인 정치성향의 고소득층을 의미하는 '강남 좌파'다. 진보 가치관과 함께 물질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강남 좌파는 이상적인 엘리트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이 세력은 이제 좌파 정당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서구 민주주의 경험을 따른다면 강남 좌파가 좌파 정당의 주류로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2000년 지적한 대로 미국 진보 진영의 신주류는 1990년대에 미국의 강남 좌파 격인 '보보스'로 교체되었다. 보보스는 보헤미안과 부르주아의 합성어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를 뜻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차기 대통령 후보, 앨 고어 전 부통령 등이 보보스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다.

강남 좌파의 부상에 대한 우파 정당의 대안은 무엇인가. 누가 강남 좌파와 경쟁할 수 있는 우파 세력인가. 전통적으로 우파는 '강남 우파'와 '강북 우파'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두 그룹 모두 젊은 층의 지지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강남 우파는 물질적인 성공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산업사회 엘리트 그룹으로 탈물질주의 가치를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강북 우파는 보수 성향을 가진 저소득층 중심의 정치 세력으로 문화 정체성이 약한 편이다.

그렇다면 강남 좌파의 대척점인 '홍대 우파'를 찾아야 한다. 홍대 우파란 탈물질주의 가치를 기업 활동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기업가 집단이다. 홍대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지역이 강남의 상류사회 물질주의와 대비되는 대안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가 강도현이 표현한 대로 홍대는 ‘운동과 사업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강남과 홍대의 차이는 상가의 구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강남이 고급 식당, 부티크와 명품 가게 등 상류사회 수요를 만족하는 상점으로 채워진 데 반해, 홍대는 인디음악, 거리공연, 독립서점, 독립브랜드, 실험예술 등 대안 문화를 추구하는 장소가 많다. 

강남 좌파와 홍대 우파는 비슷한 경제력과 가치관을 지녔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법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강남 좌파가 진보 가치의 통로로 사회 운동과 정치에 집중한다면, 홍대 우파는 시장을 통해 사회가 필요한 가치를 실현한다. 전자가 진보 정치 세력의 엘리트라면, 후자는 탈물질주의 가치를 선호하는 대중적 시장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에는 이미 홍대 우파가 존재한다. 미국의 '히피 기업가'와 임팩트 투자자(Impact Investors)가 대표적이다. 히피 기업가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홀푸드마켓의 존 맥케이 등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 변혁, 환경문제 해결, 삶의 질 향상, 다양성 제고 등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 히피 출신 기업가다. 특히, 맥케이는 ‘히피 자본주의’정신의 선구자로 2013년 '의식 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라는 저서를 출판해 뚜렷한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물 경제에서 활동하는 히피 기업가와 달리, 임팩트 투자자는 사회문제 해결이나 사회적 책임(CSR)에 충실한 기업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히피 자본주의를 실천한다. 

진보적 사회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우파로 분류되는 이유는,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재산권 보호, 자유무역, 규제완화, 세금인하 등 보수 노선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케이는 사내 노조의 설립을 저지할 정도로 사(社)측 경영 철학을 고수한다.

문제는 홍대 우파의 존재감이다. 아직 홍대 우파라고 부를만한 기업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홍대를 중심으로 그 가능성이 보인다. 홍대가 연예기획사, 출판사, 홍보기획사, 미디어 기업이 몰리고 서울시와 민간에서 개발하는 벤처 생태계가 들어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탈물질주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홍대 지역에서 성장하는 기업가 중 누군가가 맥케이와 같이 탈물질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글로벌 대기업을 키울 것이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홍대 우파 시대가 열릴 것이다. 



출처: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8/2015081800852.html?outlink=faceb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