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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조달 이야기> 둘째, 정부조달에서의 원산지 규정 - 바이 어메리칸법, FTA, WTO GPA

정부조달에서 자국의 물품를 우선하는 성향은 어느 나라에나 있게 마련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33년부터 소위 바이 어메리칸법 (Buy American Act)이 있어왔다. 그런데 자유무역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WTO를 비롯한 다자간 혹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 FTA)들이 앞다투어 체결되다 보니, 먼저 있던 국내법과 섞여서 상당히 복잡해 지게 되었다. 매번 새로운 FTA가 체결될 때마다 이를 반영하여 연방조달규정 (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FAR (흔히 "파"라고 부른다))이 개정되는데, 최근 한미FTA때도 마찬가지로 이를 반영하는 법규의 개정이 있었다.

현재 미국의 정부조달에는 서비스, 즉 용역의 조달이 삼분의 이 이상을 차지하기에 과거에 물품에만 한정되어 인식해 오던 사고의 틀을 넘어 과연 용역의 원산지 (Country of Origin)는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의 FTA에는 용역도 분명히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역이라는 것이 회사가 어디에 법인을 설립하였는지, 어디에 본사가 있는지, 주요한 결정은 어디에서 하는지, 실지 용역 업무를 실행하는 곳은 어디인지 등, 로스쿨에서 배우는 소위 법인의 거주지 (Residency)나 국제 조세법 판별하고도 유사한 유권해석이 필요할진데, 문제는 미국의 연방조달규정에 단지 '회사가 어디에 "Establish" 되었는지로 판단한다'라는 불분명한 한마디만 씌여 있는 것이다. "Establish"라는 단어를 정의해 두지 않았으니 이것이 법인의 법적인 "설립"인지 아니면 실지 사무실에 간판을 달고 사람들이 일한다는 의미의 "설립"인지 알 도리가 없다. 따라서 미국연방 조달공무원들은 소속된 부처 정책실의 지침 및 재량에 따라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앞으로 점점 판례를 통해 풀어야할 숙제라고 할 수 있겠다.

불분명한 용역의 원산지 판별의 문제는 뒤로하고 개념이 정립된 부분을 살펴보자면, 외국산 물품에 대해 미국의 정부조달시 적용되는 법규는 대략 다음과 같다.

바이 어메리칸법 (Buy American Act)

바이 어메리칸법은 용역은 포함하지 않고 물품만을 다루고 있는데, 계약액수가 3천불과 $25,000 사이일때 적용된다 (2014년 현재). 법의 취지는 값이 어느정도 비슷하면 자국인 미국산 물품을 사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라는 범위는 자국 업체가 대기업일 경우에는 6퍼센트, 소기업일 경우 좀더 써서 12퍼센트까지의 프리미엄을 법률에서 인정한다. 말하자면 조달수요기관이 입찰제안을 받았는데 미국산 물건이 $10,500이고 같은 품질의 중국산 물건이 $10,000이라면 (미국산 물건이 5퍼센트) 더 비싸더라도 미국 물건을 사라는 것이겠다. 그러나 만약 위의 예에서 미국 물건이 $12,000이었다면, 같은 품질의 중국 물건보다 20퍼센트나 비싸므로 중국 물건을 사라는 얘기도 된다. 따라서 바이 어메리칸법은 법의 명칭이 주는 인상처럼 미 연방정부 조달에서 항상 미국산 물건만을 사야 한다는 규정은 아니다.

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 FTA)

계약 액수가 올라가서 $25,000부터는 FTA의 적용대상이 되는데 (각 FTA마다 적용액수가 다르나 현재는 NAFTA상 캐나다산 물품에 적용되는 $25,000이 가장 낮은 액수임) 그럴 경우 FTA규정이 먼저 있던 바이 어메리칸법을 누르고 우위법으로 적용된다. 미 국회가 1979년 통상협정법 (Trade Agreements Act, TAA)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에서 대통령에게 향후 체결될 FTA를 기존법인 바이 어메리칸법보다 우선하여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FTA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자국산 물건 우선 정책의 장벽을 없애고 협정 대상국의 물품에 대해서는 차별없이 똑같이 취급해 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몰래 조달을 하면 안되니까 FTA조건에는 투명하고 충분한 입찰유인의 시간을 주는 공고를 해달라는 조건 등 절차적인 보장도 따라 붙는다. 따라서 만약에 미국산 물품과 FTA 대상국의 물품이 입찰 경쟁에 올랐다면 똑같이 심사하게 된다. 예컨대 한미FTA의 적용대상인 $100,000이상이 되는 경우엔 한국산 냉장고가 미국산 냉장고보다 1불이라도 싸고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이 최고가치 (Best Value)에 부합되는 것이다.

WTO내 정부조달에 관한 세부협정 (Agreement on Government Procurement, GPA)

WTO GPA는 말하자면 다자간 협정으로 여타 FTA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한가지 유별난 특징이 있다. 바로 배타적 최혜국 조치이다. 다자간 통상협약 대상국의 상호혜택을 극대화 하기위해 (또한 추측컨데 비협약국에 대한 유인을 목적으로) 적용대상 액수인 $204,000 (2014년 현재 물품과 용역에 적용, 건설은 $7,864,000) 이상의 정부계약에 대해서는 현재 미국과 통상협약을 맺고 있는 119개 국가 (FTA, WTO GPA, 및 일부 교역대상국 포함)의 생산품이나 용역 외에는 구매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과 인도 등 미국과 정부조달에 관한 통상협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국가의 물품이나 용역은 $204,000이상의 계약에서는 미국 정부에 납품할 수 없다.

물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 (Country of Origin)

여기서 한가지 더 짚어볼 사항은 과연 물품에 대한 원산지는 어떻게 판별하는가 이다. 요새처럼 부품생산은 일본에서, 조립은 중국에서, 포장 및 마케팅은 또 다른 나라에서 하는 복잡다난한 유통환경에서 원산지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원산지 얘기를 하면 물품의 밑바닥에 씌여있는 MADE IN USA표시를 연상한다. 그런데 일부 미국 정부의 조달관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은 이 표시가 미국의 소비자를 염두에 둔 규정으로 정부조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MADE IN USA표시는 미 공정거래위원회 (Federal Trade Commission)에서 관할하는 인증으로 말 그대로 미국의 소비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침에 따르면 MADE IN USA표시는 상품의 거의 모든 부품과 재료가 미국산이어만 ("All or Virtually All") 부착할 수 있다. 반면 정부 조달에는 계약의 액수에 따라 적용되는 법률에 맞추어, 바이 어메리칸법에서 요구하는 원산지 테스트나 FTA및 WTO GPA에서 요구하는 테스트를 따라야 한다.

바이 어메리칸법상 내국 제품 (Domestic End Product)의 테스트는 50퍼센트를 초과하는 부품이 미국산일 것을 요구한다. 반면 WTO GPA를 비롯한 FTA상의 테스트는 부품의 비율을 완전히 무시하고 단지 "새로운 최종 물품의 생산" ("Substantial Transformation")이 어디서 이루어 졌는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백 퍼센트 미국 부품으로 중국에서 전화기를 생산하였다면 WTO GPA와 FTA상 중국산 물품이고, 백 퍼센트 중국 부품으로 미국에서 생산하였다면 미국산 물품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물론 조립 (Assembly)과 새로운 물품의 생산 (Substantial Transformation)이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나름 난해한 부분이나 판례를 통해 정리되어 있다.

총액 기준으로 보면 거의 대부분의 미국의 정부계약이 현재 WTO GPA상의 기준액인 $204,000이상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미국 연방정부조달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산지 규정은 "Substantial Transformation" 테스트에 따른 최종 물품의 생산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만약 중국에서 생산된 피씨 타워에 적당한 메모리와 그래픽 카드를 넣어 역시 중국산 모니터, 키보트와 마우스 등등을 잘 조합하여 한국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구성하여 박스에 넣어 미국 정부에 납품하고자 한다면 이 컴퓨터 시스템은 어디가 원산지일까?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eric-cho/story_b_5088692.html?utm_hp_re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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