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Kaung Htet for WSJ.Money
미얀마 양곤에 있는 TS1건물과 이반 푼.

홍콩, 런던 등지에서 온 사교계 명사들이 화려한 차림을 하고 미얀마 양곤의 비포장도로를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움푹 패인 곳과 진창을 피하고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쥐를 피해 이들이 도착한 곳은 ‘트랜짓 셰드 1(TS1)’이라는 이름이 붙은 녹슨 창고 건물이었다. 물결 모양의 철제 지붕과 녹색 외관은 이 건물을 둘러싼 낡은 부두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하지만 TS1의 내부는 아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 네팔 다음으로 빈곤한 미얀마의 나머지 부분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얀마 신화 속 용과 함께 어린이를 그린 현대 미술 작품이 벽을 채우고 있었고, 유명 인사들과 세계를 돌아다니는 부유한 미얀마 교포들이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 날은 전시 공간과 소매 상점을 결합한 TS1의 개업식이 열린 날이었다. 미얀마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가의 막내 아들이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이반 푼이 TS1을 창안했다. TS1은 60년에 달하는 오랜 세월 동안 군사정권의 통치를 받다가 최근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맞고 있는 양곤에 새로운 유행과 화려함을 불어넣길 바라고 있다.

그 화려함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높은 가격이 따라온다. 옆방에서는 미얀마 샨 지방의 티크 목재로 만든 벤치를 2,500달러에 팔고 있고, 블라우스 등 갖가지 상품이 TS1의 시그니처 브랜드 ‘미얀마메이드’ 상표를 달고 있다. 수천 달러짜리 가방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프로엔자 슐러와 미셸 오바마, 케이트 미들턴 등이 좋아하는 네팔계 미국인 디자이너 프라발 구룽의 하이패션 쇼케이스도 이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푼의 비전은 새로운 미얀마의 시작에 불과하다. 잔인한 군사정권을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났던 망명자들이 귀국하면서 그 화려함과 호화로움을 주도하고, 자금을 지원하고, 또 즐기고 있다. 2011년에 군사정권이 끝나고 명목상의 민간 정부가 권력을 차지하면서 대중 집회 규제가 완화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문호가 개방됐다. 이에 따라 서구 정부들은 대부분의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이제 미얀마는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서구식 소비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푼과 그의 동료들이 그 움직임을 이끌고 있다.

싱가포르의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6만2,400달러, 미국은 5만2,800달러인 데 비해 미얀마는 1,700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TS1의 상점 바로 뒤에서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배회하고 있다.

오랫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됐던 미얀마는 수십 년 간의 고립 끝에 자본주의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부를 창출했던 러시아, 베트남, 중국 등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이 국가들이 문호를 개방하자 1세대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이 등장했다. 일부는 합법적 사업을 통한 것이었고, 부정하거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돈을 번 이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미얀마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예상한다.

당국이 은행, 석유, 가스 탐사부터 휴대폰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허가를 발행하고 있어 경제 개혁으로 인한 새로운 기회가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유층을 조사하는 컨설팅업체 웰스엑스는 현재 미얀마에는 투자가능 자산을 3,0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가 4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숫자가 향후 10년 동안 7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빠른 성장세다.

부가 확대되고 있다는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최고위급 장군들을 제외하고는 외제차 수입이 금지됐지만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자 검은 롤스로이스 세단과 재규어 스포츠카들이 자동차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페라리, 벤틀리, 포르셰뿐만 아니라 도로에서 합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 부가티 베이론이 폐차장에 가야 할 것 같은 낡은 택시들과 함께 도로를 달린다.

미얀마의 상업 수도 양곤에 있는 고급 부동산 가격도 치솟고 있다. 골든 밸리 지역에 있는 2층짜리, 침실 4개가 있는 주택의 임대료는 월 1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오래된 식민지 시대 단층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집을 허물고 기둥이 늘어선 저택을 짓고 있다. 한편, 그들의 20대 자녀들은 나이트클럽에 모여 조니 워커 블루 라벨 위스키를 주문한다.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새로운 수입원을 찾고 있는 개인 자산관리사와 럭셔리 브랜드들의 레이더망에도 미얀마가 포착됐다. 소비자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미얀마인들은 지난해 와인에 190만 달러밖에 지출하지 않았지만 2018년께에는 와인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후에는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다. 유로모니터는 미얀마가 “상당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아시아의 마지막 경제 개척지”라고 진단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미얀마가 러시아, 중국처럼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계급 간 긴장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부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얀마 지도자들은 과시적 소비를 곱게 보지 않았으며, 재산이 많은 몇몇 가문들은 대체로 자국에서 그 돈을 쓰기보다 외국 은행에 숨겨놓곤 했다.

미얀마인들은 나라가 개방되면서 얻는 이익이 전 군사정권과 연관된 엘리트들에게 축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일부 미얀마 기업가들은 마약 밀매, 부패 정부 계약, 무분별한 천연자원 채굴 등과 관련됐다는 혐의로 아직 서구의 경제 제재 대상이다.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미얀마인들도 있다. 하지만 새로 부자가 된 이들은 그렇게 볼 수만은 없는 복잡한 상황이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수십 년 동안 궁핍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조금 사치를 부리고 싶어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

TS1의 이반 푼은 “양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양곤에 들여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비전이 빈곤에 허덕이는 미얀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1만6,500달러짜리 소파에 기대며 미얀마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너무 이른 일은 아니다”라며 “임금이 오르고 있고 부도 증가하고 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결국엔 일어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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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kr.wsj.com/posts/2014/09/05/%EB%AF%B8%EC%96%80%EB%A7%88%EC%9D%98-%EC%8B%A0-%EB%B6%80%EC%9C%A0%EC%B8%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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