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제독하면서 든 생각, '꾸준함이 답이다.', '밸런스가 답이다.'
# ‘그 분야’가 좁을수록, 전문적일수록, 그리고 권위적일수록, 사람들의 자부심이나 배타성도 강하고 거기서 날아오는 저항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 소설가의 정원은 한정이 없지만 서점의 공간은 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 천재에게는 천재의 속도가 있고 지식인에게는 지식인의 속도가 있고 학자에게는 학자의 속도가 있습니다.
# 그 기한을 넘어서면 두뇌의 명석함을 대신할 만한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합니다. 말을 바꾸면, 어느 시점에 날카로운 면도날을 잘 갈린 손됚로 전환하는게 요구됩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잘 갈릴 손도끼를 잘 갈린 도끼로 전환하는 게 요두됩니다. 그 같은 몇 가지 전환 포인트를 제대로 뛰어넘은 사람은 작가로서 한 단계 거물급이 되고, 아마도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것 입니다.
# 그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며 ㄴ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 한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과연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 내 안에 있을 터인 뭔가를 믿는 것이고, 그것이 키워낼 가능성을 꿈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감촉이 나의 내부에 아직껏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입니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겼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겼던것은, 혹은 태도로서 표명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라는 것이겠지요. 그 하나는,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독자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그 두 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혹은 문단적인 형식상의 추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경우, 구체적인 형태에 의한 게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진실입니다.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후세에 남는 것은 작품이지 상이 아닙니다.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하지만 한 편의 작품이 진실로 뛰어나다면 합당한 시간의 시려을거쳐 사람들을 언제까지나 그 작품을 기억에 담아둡니다. 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을 각광받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지는 못합니다. 일일이 말할 것도 없는 얘기지요.
# 오리지널이란?
: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밤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 사람들의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싶다. 그것이 소설을 쓰면서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이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을 말합니다.
# 한정된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 혹은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건반이 여든여덟 개밖에 없어서 피아노로는 더 이상 새로운 건 나올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겠지요.
#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싸으이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러 ㄴ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 본인이 아무리 ‘잘 썻다’, ‘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내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고는 외부의 비판에 견뎌낼 태세를 정비합니다. 작품을 쓰는동안에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비평, 조언은 가능한 한 허심탄회하게, 겸허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안된다.
# 중요한 덧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 입니다. 작가가 이곳을 좀 더 잘 고쳐보자 라고 결심하고 챙상 앞에 앉아 문장을 손질한다, 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떻게 수정하느냐라는 방향성 따위는 오히려 이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 했다.’라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을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배짱 좋고 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신한 실감만 있다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 One dat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
# 기초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또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 됩니다.
# 그 같은 깊은 어둠의 힘에 대항하려면, 그리고 다양한 위험과 일상적으로 마주하려면 반드시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강함이란 타인과 비교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강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 ‘필요한 만큼’의 강함을 말합니다. 마음은 가능한 한 강인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장기간에 걸쳐 그 마음의 강인함을 유지하려면 그것을 담는 용기인 체력을 증강하고 관리 유지하는 것이 불가결합니다.
# 그런데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 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그런 저메서는 유전이나 금광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걸 찾아내고 일단 손에 넣으면 그 다음은 만사 오케이. 살살 부채질이나 해가며 안일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라는 건 아닙니다. 그 입장권이 있으면 당신은 행사장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것뿐입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건네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취하고 혹은 버릴지, 거기서 생기게 될 몇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재능이나 자질이나 기량의 문제고, 인간으로서의 기량의 문제고, 세계관의 문제고, 또한 때로는 극히 심플하게 신체력의 문제입니다.
# 유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걸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 최소한의 지지자를 획득하는 것도 프로로서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만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 사회 전체가 술렁술렁 들떠서 입만 벌렸다 하면 돈 얘기입니다. 차분히 자리를 잡고 시간을 들여 장편소설을 쓸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곳에 있다가는 나까지 자칫 망가져버릴 것 같다 그런 기분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좀 더 팽팽하게 긴장된 환경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척하고 싶다. 나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1980년대 후반에 일본을 떠나 외국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된느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포지션, 하나의 장소에 안주해서는 창작 의욕의 신선도는 감퇴하고 이윽고 상실됩니다.
# 프런티어가 제대로 유효하게 개척될지, 어떨지, 나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되풀이하는 건 같지만, 어떤 가치를 목표로 내건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몇 살이 되더라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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