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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제 나이도 이제 40을 넘겼기에 하계, 동계 포함해서 십수차례 올림픽 개회식을 봤습니다만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 왜 저기서 하얀 천을 들고 뛰어다니는지 저 사람들은 왜 저기서 저렇게 단체로 굴러다니고 있는지 방송국 아나운서나 어느 대학교 교수님의 해설을 들어봐도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개막식뿐만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올림픽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올림픽 선수들에 대한 언론의 태도'입니다. 올림픽이 열릴 때면 TV화면이나 신문지면 가릴 것 없이 모두 뜨겁습니다. 용광로에서 막 꺼낸 듯이 시뻘건 열기가 뿜어져 올라올 듯합니다. 태극전사, 낭자군단, 대첩, 승전보, 부상투혼 등등. 단어로만 보면 멀리 적지로 떠난 병사들의 전투소식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이 단어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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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운동경기를 보는 것은 해당 종목에 적합하도록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배양시킨 이들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보기 위함입니다. 그 경쟁은 결코 누구를 원망해서도 아니고 '누가 더 노력했는지, 누가 더 열심히 준비했는지'를 가릴 수 있도록 스포츠의 형태로 경쟁을 하는 것이죠. 물론 대역전극, 짜릿한 승부, 여왕의 재림 같이 짧은 시간 내에 한 인간의 거대한 서사를 보는 것도 밤을 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린 올림픽은 공정하다고 그래도 믿으니까요. 국가대표들이 외국에 나가 시합을 할 때 마치 전투상황을 중계하듯 종군기자처럼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표현이라고 합니다. 내선일체를 고취시키기 위해서 스포츠 만한 것도 없었던 것이지요.


스포츠는 정치권에겐 복잡한 국내 정치 문제를 덮어버릴 수 있는 용도였고 기업과 방송국에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도 없습니다. 운동선수의 시합은 이 사회에선 일종의 공공재이거든요. "1승 전선 이상 없다. 태극전사 준비완료" (1994.06.13 한겨레/ 94년 월드컵 관련) "태극전사 무조건 이겨야. 지옥의 강훈"(1994.09.02 동아일보/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관련). 기사검색 카인즈에서 태극전사라는 키워드만 입력하면 수많은 기사와 사설이 나옵니다. 이 글들에선 철저하게 운동선수를 국가를 대표해서 전쟁터에 나간, 국민적 염원을 담고 싸우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의 본래 의미는 운동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들은 철저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복무하는 전투병사가 됩니다. 뭐 어쨌든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민적 영웅이 되고 네이버 검색어 1위가 될 수도 있고 포상금, 연금, 취업보장, 광고모델에 때로는 라면 100상자(!)까지 받을 수 있느니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은 오직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만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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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 올림픽 기자회견. 화면 오른편 동그라미는 곽민정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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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성적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또는 그 기준을 뛰어넘는 것을 말하지요. 즉 '금메달'을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에겐 위로를 보내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에게 메달이란 전투기 꼬리 날개에 그려진 킬마크와 같습니다. 이 킬마크가 많을수록, 적진을 헤매며 많은 수의 적군을 물리칠수록 국민영웅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매몰찬 대우를 받습니다.


소치 올림픽이 한창일 때 모 방송국의 뉴스 대본이 그대로 포털뉴스에 올라오는 작은 사고가 있습니다. 동계 올림픽 선수 인터뷰 대본이었는데 "*** 선수는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 시간 모자라면 그냥 넘어가 주세요."라고 쓰여 있더군요. 이런 것뿐만이 아닙니다. 메달을 딴 선수가 금의환향 기자회견을 할 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자리도 배정받지 못한 채 '입석 기자회견'을 할 때도 있고 최고 지도자가 직접 하사한 퍼레이드라는 성찬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여 광화문 뙤약볕에서 흰 양복을 입은 채 행진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목발을 짚은 채 말이죠. 북한이 아니라 이 나라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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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 황경선 선수의 광화문 목발 퍼레이드.

아까도 말했지만 '국가대표'는 공공재이거든요. 어느 개인이 대한의 건아가 되고 낭자군단이 되는 순간 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영구히 남을 수도 있는 부상을 무릅쓰고 시합에 임해야 합니다. 그가 만약 좋은 성적을 내면 취재진들은 그의 집으로 몰려가며 온갖 개인사를 헤집습니다. 불우하거나 애틋했던 개인사는 그의 화려한 성공과 대조를 이루어 감동을 전하는 뉴스 배경막으로 사용됩니다. 이제 곧 월드컵 시즌이 시작됩니다. 우린 또 수많은 태극전사를 마주하게 될 겁니다. 이왕 태극 전사로 그들을 지칭할 것이라면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든 세우지 못하든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프로레슬러'라는 '비인기 종목 운동선수'의 개인적 입장이 가득한 글 좀 올려봤습니다.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bruno-k/story_b_5082208.html?utm_hp_ref=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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