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외국에 다녀온 한 선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선배가 외국에 다녀온 후 토익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가 안되었다. 외국에 다녀왔는데 왜 토익공부를 할까? 

또 이렇게 생각했었다. 저 선배 영어 대박 잘할꺼야! , 나중에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글을 쓰는 오늘. 나는 두려움이 있다.

1) 그래도 외국생활 몇 달 남짓 했는데, 모르는 구문이 나왔을 때 헤메이는 내 모습. 

간단한 영작조차 틀리는 내 모습가운데 말이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영어가 무섭다. 내가 성적이 안나오거나 영어공부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남들 다 아는 것을 내가 모를 때, 그 두려움. 

굉장히 기초적인 것이 나왔는데 나만 몰랐을 때 두려움. 

구문을 공부했는데 문장구조가 때론 한눈에 안보였을 때 두려움 등. 영어가 두렵다.

영어를 마주하고 싶다. 영어가 좋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두렵다. 참 이상하리만큼 내 안이 아이러니하다.


2) 사람들 시선과 기대가 두렵기 시작했다. 

예전 내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생각했던 '막연한 외국다녀온 선배에 대한 동경과 환상' 그것이 두렵다. 

실상 나는 그렇지 않는데, 

그들의 판단에 의해 내가 판단되어지고 그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버린다면. 

그것은 나 자체도 속상하지만, 나의 보여지는 모습 가운데 그의 판단의 착오를 증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렵다. 아마 내가 돈이 조금 있어서, 그냥 유학이 왔다면 외국생활이 아주 재미있겠지만, 

나는 삶이 먼저인 '삶지향형 인간'이기에 공부보다 삶이 먼저다. 

그래서 아직도 남들이 다 가는 학원도 못다녀보고,

그렇다고 돈도 겁네 번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의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또 내가 두렵다. 이렇게 병신 쪼다였구나.



* 그리고 이제서야 그 선배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 선배도 외국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선배 역시 생활이 먼저였을 꺼라고, 

막상 외국에 가보니 생활이 안되니, 생활전선이 먼저이다보니

영어를 실상 공부하고 느끼고 체험할 시간이 적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선배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로 인해 나도 서글펐다.

그 선배는 생각했을까? 자신이 외국을 다녀온 후 다시 토익성적에 목을 매달꺼라는 것을?


...

...



*오늘 나는 한 가지 두려움을 깼다. 오늘 나는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명령문과 의문문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부터 나에게 알려달라고, 나를 영어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중 하나가 '자기 스스로가 개찌질이, 졸라 멍청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신을 지식과 지혜로 포장하려고 하고, 

때론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다방면의 여러 상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배척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명령문, 의문문'의 문자로 '스스로 찌질이'임을 인정했다. 

보내는 순간까지 망설이고 자존심이 겁네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내고 나서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이것도 모르는 이에녹' 이 아니라 '이제 명령문 의문문 정복이 가능하다 이에녹'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다. 난 병신 쪼다 멍청이다. 그러나 한 부분씩 채워가려고 한다.

그냥 그렇게 마땅히 내가 모르는 것을 채워가면서 하나씩 완성해가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지금까지의 배경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과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이기 때문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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