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설계2동 전시실에선 '최고경영자(CEO) 신기술 발표회'가 열렸다. 행사가 시작되자 인간의 척추와 다리 고관절을 본떠 만든 ‘입는(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한 연구원이 중앙 무대에 올랐다. 

연구원이 움직일 때마다 '위잉 칙, 위잉 칙'하는 기계음이 전시실에 울려퍼졌다. 로봇은 연구원이 몸에 힘을 다 빼도 넘어지지 않게 지탱했고, 연구원이 무거운 짐을 들 때는 힘을 보태 일으켜 세웠다. 발표회를 지켜보던 정의선 부회장과 현대차 사장단이 박수를 보냈다. 

현대차 의왕중앙연구소 인간편의팀 현동진 박사가 입는 로봇 H-LEX 2.0을 착용하고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차 제공
 현대차 의왕중앙연구소 인간편의팀 현동진 박사가 입는 로봇 H-LEX 2.0을 착용하고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차 제공

연구원의 제안에 따라 정 부회장은 입는 로봇을 착용하고 몇 가지 동작을 했다. 정 부회장은 “완성도가 높은데 놀랐다”면서 "노인분들이 이동할 때나 환자들이 재활 치료를 할 때 착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 직후 현대차 경영진은 입는 로봇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고, 선행디자인팀과의 협업을 지시했다. 

당시 정 부회장 앞에서 입는 로봇을 선보인 연구원은 현대차 의왕중앙연구소에서 인간편의팀 그룹장을 맡고 있는 현동진 박사(책임연구원)였다. 현 박사는 현대차의 로봇 개발 계획을 2년 가까이 앞당긴 주인공이다. 지난 24일 의왕중앙연구소를 찾아 현 박사와 인간편의연구팀 정경모·박상인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인간편의팀 박상인·현동진·정경모 책임연구원. /현대차 제공
 인간편의팀 박상인·현동진·정경모 책임연구원. /현대차 제공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의 이름은 'H-LEX(현대라이프케어링엑소스켈레톤-Hyundai Lifecaring Exo Skeleton)'다. 걸음이 불편한 노년층, 자세 교정이나 재활이 필요한 이들의 보행을 돕는 로봇이다. 현 박사는 "지금까지 앞뒤로밖에 움직이지 않던 무릎 고관절 부분을 좌우로도 움직일 수 있도록 개선한 H-LEX 2.0을 최근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로봇은 좁은 골목과 산 등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곳에서 인간의 이동을 돕자는 취지에서 개발됐다. 자동차 탑승자가 차에서 내린 후에도 최종 목적지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장치다. 

H-LEX는 현대차의 로봇 개발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인 제품이다. 현대차는 자동차 품질수준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로봇 분야에선 혼다 등 일본 경쟁사에 비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대차는 2년전부터 그룹 차원에서 로봇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육성할 것을 결정했다. 이런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스카우트한 인물이 현 박사다. 
현대차가 현 박사 영입에 공을 들인 것은 그의 경험과 지식 때문이었다. 현 박사는 ‘입는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UC 버클리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의 제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로봇으로 이름을 알렸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치타'의 제어 기술 개발에도 참여했다. 

현 박사의 합류로 연구팀은 회사 경영진이 주문한 일정보다 약 2년 빨리 로봇을 개발했다. 현 박사는 과거 의대에서 공부한 경력도 있다. 그때 쌓은 인체 지식을 로봇에 접목해 개발 기간을 앞당겼다고 한다.

현 박사는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센서에서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이 문제는 미국 내쇼날인스트루먼트(NI)의 설계툴과 모듈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인간편의팀이 개발한 입는 로봇을 상업화할 계획이다. 현 박사는 "2020년쯤 양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일본 도요타 역시 2020년쯤 로봇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박사는 “로봇 대중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제품을 더 가볍게 만들고, 소형화해야 한다"며 "특히 이용자의 움직임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발부분의 센싱 기술을 정교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로봇이 자동차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현 박사는 “로봇은 기본적으로 모터 기반의 시스템으로 다양한 센서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구현한다”면서 “이는 현재의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현 박사는 자율주행차도 로봇 기술에서 나왔으며, 자율주행에 필요한 차선이탈 경보 기술과 측후방 경고 시스템 같은 기술도 로봇과 연결돼 있다. 

연구팀은 입는 로봇 외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현 박사는 "1인승, 2인승 위주의 개인 이동 수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며 "기존의 차와는 전혀 다른 개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25/20150925036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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