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소비자를 분석할 때 Demographic, 즉 인구통계학적 기준을 주로 활용해 왔다. 연령, 성별, 거주지역, 소득, 결혼 여부 등의 요인들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하에, 이를 시장이나 인구집단을 세분하는 기준으로 삼아 소비자 행동을 예측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구통계학적 요인들에 대한 보편적 믿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글 ┃ 오성수 대홍기획 커뮤니케이션전략연구소 소장
 
세상에는 이견 없이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믿음 같은 것이 많다. 일테면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네만이 제기한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s)은 몇 가지 대표적인 특징을 가지고 고정관념처럼 특정 대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구통계학적 이해도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비디오 게임에 열광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고, 그중에서도 10대들이 많을 것이다. SNS 사용자는 적어도 3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을 것이고, 13세와 60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거의 대부분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 지지 증가율은, 아무래도 대한민국보다는 보다 개방적인 미국이나 서구권에서 더 높게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별로 이의를 달만할 게 없는 평범하고도 상식적인 사실로 들리는가?
그런데 아래 데이터가 알려주는 사실을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대다수가 여성이며, 18세 이하보다 44세 이상의 비율이 더 높다.
INTERNET ADVERTISING BUREAU, SEPTEMBER 2014

 
 트위터 사용자 중, 가장 급속도로 늘어난 연령대는 55세 이상 64세 이하로,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무려 79%나 증가했다.
BUFFER, JULY 2013

 
 60세와 13세가 각각 좋아하는 1,000명의 예술가들 중 40%는 서로 겹친다.
GEORGE ERGATOUDIS, HEAD OF MUSIC, BBC RADIO 1, MAY 2014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대한민국의 동성애 지지자 증가율은 21%였다. 반면 미국은 11%, 스페인은 10%, 이탈리아는 9%였으며, 이웃나라 일본은 5%였다. PEW RESEARCH CENTER, 2013
 
앞에서 나열한 ‘상식적인 믿음’들은 100% 사실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물론, 100% 거짓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상식적이고도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받아들였을까? 그것은 우리가 통상 가지고 있는 연령, 성별, 지역, 문화 등 이른바 ‘인구통계학적 요인들(Demographic Factors)’에 대한 보편적 믿음 때문이다.
 
 
탈-인구통계학적 소비행동이 이끄는 새로운 시장
 
지금까지 우리는 소비자를 분석할 때 Demographic, 즉 인구통계학적 기준을 주로 활용해 왔다. 연령, 성별, 거주지역, 소득, 결혼 여부 등의 요인들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하에, 이를 시장이나 인구집단을 세분하는 기준으로 삼아 소비자 행동을 예측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대체로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위의 ‘상식’을 뒤집는 데이터에서 보듯, 인구통계학적 요인들에 대한 보편적 믿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영국의 트렌드 분석 전문회사 trendwatching.com 등 여러 연구기관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Post-Demographic Consumerism’, 즉, ‘탈-인구통계학적 소비행동’이라 규정짓기 시작했다. 포스트 데모그래픽이라는 키워드는 전통적 인구통계학 기준에 따른 소비자 행동 모델을 탈피하여 자유롭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던 대로 행동하지 않는 소비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얘기며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예측할 수 없는 소비 행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집중해서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첫째, 탈-인구통계학적 소비 행동의 원인은 무엇일까? 둘째, 그 원인에서 출발해 결과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먼저, 소비행동 변화의 원인과 관련한 이야기다. 근래 모든 변화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그것’이 여기서도 해당된다. 바로 ‘디지털(digital)’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전 연령대, 전 성별,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동일한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정보에 대한 접근과 개인의 정보 생산이 자유로워질수록 비밀과 성역은 사라진다. 남성만이 혹은 여성만이 아는 것, 10대만이 혹은 60대만이 아는 것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라 해도 관심만 있다면 모를 이유는 없다. 이런 배경에서라면 비디오게임에 열광하는 40대 여성이 더 많은 것도, 13세와 60세의 음악 취향이 40%나 일치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는 것은 곧 동시대 사람들 간의 의식(Consciousness)의 공유를 초래한다. 그리고 의식의 공유는 경험의 공유를 창조한다. 그 증거가 곧 ‘글로벌 메가 브랜드’의 존재다.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이케아, 맥도날드, 유니클로, 나이키를 구입하고 있다. 글로벌 메가 브랜드는 전 세계, 전 연령대에 걸쳐 모든 소비자가 원하는 보편적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 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됨에 따라, 전 세계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메가 브랜드의 편재성(Ubiquity)과 집단적인 친밀감(Familiarity)이 더욱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개인적으로, 더 세분화되는 소비자 니즈
 
물론 모든 소비자가 원하는 보편적 가치란 산업혁명 시대의 대량생산 제품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글로벌 메가 브랜드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들은 해당 카테고리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본연의 가치를 충실하게 충족시켜주는 브랜드다. 동시에 이 브랜드들은 그 분야의 가장 혁신적이며 선도적인 그룹에 속한다. 또한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보편성이란 이런 것이다. 이와 같이 평등하고 동시적인 정보 공유에 의해 촉진된 후기 인구통계학적 소비 행동은, 모든 부류와 계층의 소비자를 관통하는 보편성에 대한 지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에 의해 정보의 공유가 자유로워진 것은 물론이고, 이용 가능한 정보의 양과 종류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런 관점에서 소비 행동을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평생 모르고 살았을 지도 모를 새로운 관심사나 취향, 욕구 등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세밀한 영역까지 정보가 개방돼 있기에 소비자의 지식과 이해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구축되고 있으며, 이에 비례하여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은 더욱 다양화, 세분화되고 있다. 더불어 매일 새로운 것이 쏟아지기에 이들의 관심사는 급격하게 바뀌기도 한다.
 
이렇듯 디지털이 원인 또는 동인이 된 소비행동의 변화들이 관찰되고 있다. 그렇다면 결과로 나타나는 탈-인구통계학적 소비행동의 가장 결정적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특징들이 논의될 수 있겠으나 가장 결정적인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소비자 니즈의 지극히 세밀한 개인화 및 세분화다.
 
지금 이 시대는 진정한 의미의 ‘트렌드(Trend)’라는 것이 사라지는 단계로 접어든 듯하다. 유행(Fad)이나 열풍(Fever)은 짧은 기간에도 몇 번씩, 금세 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스러져 버린다. 백인백색(百人百色), 소비자 개개인이 각자의 취향과 욕구를 너무나 다양하고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취향과 기호가 강하게 작용하는 먹거리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이미 성숙기에 접어 든 제과 시장에 메가 브랜드가 등장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이야기이다. 식생활의 서구화는 가속화되고 있지만 서구적 음식의 대표격이었던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업계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오래다. 커피 음용은 특별한 문화라기보다는 거의 일상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았지만 스타벅스를 비롯해 기존 선두 브랜드들조차 매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정보 공유가 제한적이던 시절에는 자신의 욕구도, 그걸 충족하는 방법도, 나나 주변 사람들이 아는 그 정도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손가락만 움직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동네 골목길 한켠에 내 취향에 꼭 맞는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앉은 자리에서 알아낼 수 있고, 아마존과 이베이가 있으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물건이라도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차하면 해외에 나가기도 어렵지 않다.
즉, 현재 소비자의 니즈는 전통적 인구통계학적 요인이 아니라, 개인의 히스토리, 경험의 폭과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뉘는 개인적 취향 또는 관심사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소비자 개개인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훤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수의 평균적 취향에 맞출 수밖에 없는 시판 과자 제품,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소비 패턴 이해하는 사고적 유연함이 있어야
 
이는 궁극적으로 브랜드와 소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져야 함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해온 타깃 분석 방식은 ‘20대 미혼 여성이 주로 입는, 30~40대 화이트칼라 남성이 선호하는’ 것 같이, 전체 시장을 연령 등 인구통계학적 기준으로 분할한 일부 조각인 세그먼트(Segment)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의 맹점은 목표 시장으로 선택한 세그먼트 안에 그 브랜드에 부합하는 니즈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포함돼 있을지 알 수가 없지만, 확률적으로 다른 세그먼트 대비 더 많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간주’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연령이나 성별 따위의 낡은 조건과는 관계없이, 특정한 니즈나 디맨즈(Demands)를 가진 개인들의 집합체(Aggregation)를 타깃으로 삼는다면? 이 집합체(Aggregation)는 다른 요인들과는 무관하게 특정 니즈를 가진 이들의 집단이기에 더 큰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소비자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모바일 기기, 타깃의 성향에 따라 이미 다양화, 세분화된 매체와 채널들을 이용해 원하는 집단에 거의 정확하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더 정확하게 유효타를 날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적절한 니즈를 겨냥하기만 한다면, 매력적인 니치(Niche) 시장을 발굴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소비자 행동 모델로서 탈(脫)-인구통계학적 소비행동을 소개하면서, 기존에 소비자 행동을 예측하는 데 큰 효용을 발휘했던 전통적 인구통계학적 기준이 다소 힘을 잃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소비자를 이해해야 하는 직업적 숙명을 가진 이들에게 인구통계학이란 여전히 유용한 도구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하든 간에, 핵심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적인 기준과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급변하는 소비자와 소비 패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변화의 속도는 숨 가쁘게 빠르고, 사회는 가변적이며, 혁신은 모든 집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급변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변함없이 견지해야 하는 것은, 변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적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고의 유연함’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소비자들이 가진 전통적 인구통계학적 특징이 무엇이든, 보다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 겉보기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소비자들까지도 모두 만족시키는 혁신을 일구어 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소비자 행동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광고정보센터매거진

http://www.ad.co.kr/journal/column/show.do?ukey=396664&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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