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마라톤을 한 경력은 있지만,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그것도 사막에서 이루어지는 250km의 사하라 레이스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홍콩의 영화감독 왕자웨이(王家衛)가 말하지 않았던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그렇다. 목적의식을 갖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 몸에 ‘때’만 끼지 않는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하라,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도전무대가 아닐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6박 7일간의 250km 사막 레이스, 간단한 레이스 안내와 함께 드디어 첫날 목표거리인 40km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10km마다 정해진 컷오프 타임 이내에 통과해야 다음 10km를 갈 수 있다. 10km의 거리도 직접 걷거나 달려봐야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를 체감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이라는 책에서 르 클레지오가 거리를 km로 계산하지 않고 직접 걸어서 걸리는 시간으로, 몸으로 느끼듯이 사막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 할지라도 내 몸을 움직여 이동하지 않고는 가야 할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사막 레이스는 사투 끝에 스며드는 오르가슴이다. 작열하는 태양을 등지고 누구도 밟지 않은 모래사장에 내 발자국이 찍히는 순간의 촉감, 비워도 무겁게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고 가면서도 인생의 무게는 이것보다 더 무겁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 찾아오는 경건함, 막막한 사막 위를 걸으며 오늘 가야 될 거리를 두 발로 좁혀 나가는 성취감,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부담감과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 쾌감이 찾아올 때의 알 수 없는 희열, 폭염을 뚫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이 휘발되는 느낌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기적을 실감하게 된다. 

두 손으로 배낭을 들어 올려 생긴 틈 사이로 사막의 모래 바람이 지나간다. 그때 순간적인 시원함을 느끼는 시간이 바로 행복한 시간이다. 행복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지금 내가 여기서 온몸으로 느끼는 감사의 시간이고 극한의 결핍 속에 충족되는 작은 만족이다. 별이 쏟아지는 적막한 밤에 땀으로 범벅이 된 온몸을 사막에 드러낸 채 마시는 한 모금의 소주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 때 느끼는 황홀감이 행복이다. 

“인생은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키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려 본다. 인생 전반전을 치르고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잠시 지난 반세기의 내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사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속도 경쟁을 벌이기 위해 사하라로 간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앞으로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구상하기 위해서 갔다. 

함민복 시인의 ‘비정한 길’에는 ‘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자신이 걸어온 길인/몸의 발자국/숨을 멈추고서야/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나/길은 유서/몸은 붓’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 역시 사하라에서 내 몸속에 든 길을 사하라 사막 위에 털어 놓으며 온몸을 힘겹게 흔들며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몸의 발자국을 새겨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속도를 높여 앞만 보고 달리다 어느 순간 속도보다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소중하며, 매 순간 펼쳐지는 삶의 모든 장면에서 찾는 의미의 밀도가 훨씬 의미심장하게 다가옴을 알게 되었다. 저기로 가본 사람만이 지금 여기의 삶이 소중함을 깨친다. 저기 사하라의 광활한 사막을 밟아본 사람만이 지금 여기의 삶이 얼마나 안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인지를 뉘우칠 수 있다. 낯선 사하라와의 마주침이 색다른 깨침을 주고 전에 느끼지 못했던 뉘우침을 던져주며, 인생의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250km의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다가 절반 즈음에서 탈진 상태가 되어 결국 레이스를 포기하고 말았다. 사투를 벌이며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는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기력을 쏟아 부은 나머지 더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에 눕고 말았다. 사하라 레이스의 도전 여정은 절반의 실패로 아쉬운 마감을 해야 했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구나 생각하면서도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교차되면서 마음속 갈등을 한참 동안 했다. 

그렇게 한 10분 이상 선택과 포기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오영선 산악대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등반의 완성은 정상 정복이 아니라 살아서 내려오는 데 있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나의 한계는 한계에 도전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완주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난 3일 동안 나는 사하라에서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지 않았는가. 

삶은 위험을 통해서만이 성숙해지고 진보한다.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삶에서 가장 안전한 보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색다른 체험이다. 삶은 본래 위험하고 힘든 것이다. 힘들어야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힘을 쓸 때 새로운 힘이 생긴다. 힘든 체험을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남다른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이 또 다른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레이스를 펼치면서 힘든 상황을 극복해본 사람은 사하라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하라를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사하라에서 체험한 미완의 레이스는 책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라는 내 삶의 미완성(美完成) 작품으로 남았다. 사하라 레이스는 비록 미완성(未完成)으로 끝났지만 생각지도 못한 경이로운 도전 체험을 즐겼던 아름다운 미완성이었다. 나는 그 미완성의 끝에서 또 다른 완성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의 미완성을 디딤돌로 삼아 또 다른 미완성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내일은 더 멋진 도전을 꿈꾸고 있다. 2월에 떠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가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지식생태학


기사 전문 : http://news.donga.com/3/all/20140102/599169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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