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 비스타와 자꾸만 ‘컨트롤 알트 딜리트(Ctrl+Alt+Del)’를 눌러야 하는 상황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소비자를 세뇌시키는 맥 컴퓨터와 PC 비교 광고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윈도 컴퓨터와 셀 수 없이 많은 ‘솔리테어’ 카드 게임을 접하면서 자란 나는 8년전쯤 드디어 맥을 장만했고, 이후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지난 한달간 윈도10을 사용하면서 다시 윈도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솔직히 맥OS X가 별로 아쉽지도 않다. 창을 여러개 열어놓고 작업하는 일이 잦은 내 경우, 애플 OS X보다 윈도10이 훨씬 빠르고 생산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터치스트린을 지원하는 OS인 윈도8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던 MS가 윈도10과 함께 데스크톱으로 회귀했다.
22일(현지시간)부터 윈도7과 8 PC에서 무료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윈도10은 기존 토대 위에 현대적인 디자인과 유용한 음성인식 개인비서 기능, 향상된 윈도 관리 툴을 덧입혔다. 윈도8과는 달리 사용자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도와’준다.
내가 윈도10에 이렇게 푹 빠지게 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윈도와 맥, 이 두 라이벌은 약 30년간 끊임없이 서로의 장점을 모방해왔고, 윈도10과 OS X 차기 버전인 맥OS X 엘 캐피탠에 이르러서는 둘 사이에 차이점을 찾기 힘들 정도다.
어쨌든 MS는 윈도10으로 마침내 맥을 눌렀다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폰이라는 작은 골칫거리만 빼면 말이다.
훌륭한 멀티태스커
윈도8에서 사라졌던 ‘시작’ 버튼의 부활에 윈도 유저들은 기쁨의 환성을 질렀지만, 사실 그보다 더 축하해야 할 것은 ‘태스크 뷰’ 버튼이다. 한번에 작업 중인 창과 프로그램을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는 기능으로 내가 윈도로 회귀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맥에도 ‘익스포제(현 미션컨트롤)’라는 유사 기능이 있어 프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데 사용했다. 태스크 뷰에 액세스하려면 OS X와 마찬가지로 윈도에서도 트랙패드에서 세 손가락을 위로 스와이핑하면 된다. 서피스 프로3이나 델XPS 13 처럼 ‘프리시전 트랙패드’가 있는 노트북은 바로 그거다.
하지만 델XPS 13에서조차 트랙패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많아 난 거의 단축키(윈도키+탭)를 사용한다. 직사각형 태스크바 아이콘을 클릭해도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내 맥북 에어가 최고의 윈도10 노트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터치스크린은 없을지 몰라도 스크롤링이나 네비게이팅에서 델XPS 13과 서피스 프로3를 능가하는 등 더 빠릿빠릿했다. 윈도10은 그에 걸맞은 노트북 PC가 필요하다.
나를 윈도10 멀티태스킹의 대가로 만들어 준 또 한 가지 요소는 이메일과 웹브라우저를 화면 이쪽과 저쪽으로 간단하게 스내핑(분할)할 수 있다는 점이다. MS는 이전 윈도 버전에도 앱 스내핑 기능을 포함시켰지만, 윈도10에서는 다른 열린 앱이나 창을 그 옆에 배치할 수 있다. 또한 화면에 창을 4개까지 표시할 수 있다. 특히 외부 모니터 상에 흩어져 있는 창들을 한데 모을 때 시간이 절약된다.
스내핑 기능이 너무 훌륭하다 보니 애플도 차세대 OS X와 아이패드용 iOS에 이 기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적용 면에서 MS를 따라오진 못하는데 그건 중독성 있는 키보드 단축키가 한몫했다고 본다.
윈도10의 가상 데스크톱 기능은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작업용 공간(엑셀, 아웃룩)과 놀이용 공간(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다.
훌륭한 비서
난 이제 윈도 멀티태스킹계의 우사인 볼트다. 다만, MS판 시리인 ‘코르타나’의 도움을 약간 받긴 했다. 시리와 달리 코르타나는 이메일과 캘린더, 검색 등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알고 싶어할 것 같은 정보를 미리 예측한다. 구글 나우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내 경우엔 앱을 작동시키고 재빨리 무언가를 검색할 때 코르타나가 가장 유용했다. “헤이, 코르타나”라고 부르면 음성 명령과 질문에 응한다. 하지만 빠르기로 치면 타이핑을 따라가진 못한다.
애플은 아직 시리 기능을 맥에 장착시키진 못했지만 맥OS X 엘 캐피탠에는 검색을 위한 ‘스팟라이트’ 업데이트 버전이 추가된다.
심각한 단절
윈도10은 앱 관리 기능은 뛰어나지만 정작 앱 자체는 별로다. 메모 앱 ‘원노트’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윈도 앱이 기능과 디자인 면에서 애플, 심지어 구글 앱만도 못하다.
메일 앱은 디자인이나 사용성이 떨어진다. MS가 아이폰용으로 내놓은 메일 앱과는 천지차이다. 포토 앱은 구글 포토나 애플 포토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요소를 절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미지 편집 툴이라곤 (레이건 정부 시절 이후 한번도 업데이트가 안된 게 확실한) ‘페인트’ 뿐이다. 사용하기 쉬운 비디오 에디팅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지 않다. (윈도 ‘무비 메이커’를 부활시켜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그루브 뮤직’도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 MS 오피스는 포함되지도, 매끄럽게 통합되지도 않았다.
외부에서 개발한 서드파티 앱이 MS의 부족함을 채워준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쁘진 않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내가 중시하는 ‘스포티파이’와 할 일 관리 앱 ‘분더리스트,’ 채팅 앱 ‘슬랙’ 등은 윈도 스토어에서 혹은 소프트웨어 발행업체로부터 직접 받아올 수 있었지만 트위터 앱이나 내가 맥에서 쓰는 것 정도의 저렴한 사진 편집 앱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딱 하나, 윈도 안티바이러스 앱은 넘쳐나더라!) MS는 안드로이드와 iOS 앱을 윈도10에서 이용하기 쉽게 만들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사용자 대부분은 웹브라우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구글 ‘크롬북’이 보여주듯 요즘엔 브라우저 뿐인 컴퓨터도 잘 팔린다!) MS는 ‘엣지’ 브라우저 사용자가 증가하길 바란다. 엣지는 빠르고 디자인이 깔끔하며, 특정 레스토랑이나 소매업체 사이트를 치면 자동으로 전화번호와 주소, 리뷰를 보여준다든지 웹페이지에 직접 스케치할 수 있다든지 하는 쿨한 요소도 있긴 하나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성능 문제나 브라우저 플러그인의 부재 같은 단점 때문에 난 앞으로도 구글 크롬을 기본 브라우저로 삼을 생각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난 맥을 쓸 때도 구글 서비스들을 주로 사용한다. 대개의 경우 더 낫고, 애플 서비스들과는 달리 윈도와 웹에서 액세스하기도 쉽다.
MS 입장에서 볼 때 구글 서비스보다 더 큰 문제는 애플 아이폰이다. 맥 컴퓨터 사용자는 여전히 얼마 안되는 틈새집단인 반면 아이폰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윈도10에는 유례없을 정도의 아이폰 지원 기능이 탑재돼 있으며, MS는 아이폰용 앱을 참 많이도 내놨다.
물론 걸려오는 전화를 노트북에서 받거나 가족 전원과 아이메시지로 대화하는 등 아이폰과 윈도PC로는 결코 하지 못할 일들도 있다. 그러나 아이폰은 우리네 디지털 삶을 돌아가게 하는 심장 같은 존재가 됐고, 애플은 자사 기기들이 아이폰과 잘 연동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MS도 윈도10에서 같은 시도를 했지만, 문제는 윈도폰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폰 사용자의 경우엔 지금이 윈도PC를 쓸 적기다.
모든 건 변한다. 윈도와 OS X 간의 싸움은 10년 전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졌다. 두 운영체제 모두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다양한 크기의 화면에서 앱과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보내게 된 지금, 컴퓨터 화면은 퍼즐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24시간 PC 체제로 돌아가기엔 MS가 갖고 있지 못한 조각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난 맥 컴퓨터에 윈도10을 그대로 둘 생각이다. 어쩌다 한번씩 솔리테어 카드 게임을 즐기기 위한 용도일 뿐이라도 말이다.
출처: 기사 번역 관련 문의: jaeyeon.woo@wsj.com
http://kr.wsj.com/posts/2015/07/30/%EC%9C%88%EB%8F%8410-%EB%A7%A5-%EC%A0%84%ED%96%A5%EC%9E%90%EB%93%A4%EC%9D%84-%EB%8B%A4%EC%8B%9C-pc-%EC%95%9E%EC%9C%BC%EB%A1%9C-%EB%B6%88%EB%9F%AC%EB%AA%A8%EC%9D%84%EA%B9%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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