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천예선ㆍ민상식ㆍ김현일 기자]“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颱風來的時候, 猪都會飛)” 

‘애플 짝퉁’으로 유명한 중국의 레이쥔(雷軍) 샤오미(Xiaomi) 창업자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같은 구절을 인용해 성공에 대해 설명했다. 평소 근면하게 준비를 하면, ‘태풍’처럼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때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스마트폰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샤오미는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기회를 잡았다. 레이쥔 회장은 웨어러블 시장이 형성되는 시기에 맞춰, 지난해 7월 15달러에 불과한 스마트밴드 ‘미 밴드’(Mi Band)를 내놨다. 당시 레이쥔은 제품을 공개하면서 “이 스마트밴드가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웨어러블 기기 대전(大戰)이 격화하고 있다. 웨어러블 워치(시계)에서 건강체크용 웨어러블 밴드(일종의 팔찌), 의복 등 패션분야까지 전장(戰場)은 확산일로다. 관심의 초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팀 쿡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모아진다. 이들은 세계 전자사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회사의 함장이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고(故) 스티브 잡스를 계승한 새로운 수장이다. 웨어러블 기기 시장의 최종승자가 과연 누가될지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무주공산 ‘웨어러블’ 시장 잡아라=지금까지 웨어러블 시장을 선도한 것은 손목형 웨어러블 기기다. 특히 운동 특화 기능을 가진 스마트밴드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스마트워치에 대한 수요까지 끌어왔다.

특히 샤오미의 ‘미 밴드’는 파죽지세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샤오미는 올 2분기 세계적으로 310만대의 웨어러블 기기를 판매해 17.1%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세계 3위 웨어러블 업체로 급부상한 것이다.

우리 돈으로 2만원에 불과한 미 밴드는 웨어러블 기기를 처음 접한 이들이 부담없이 살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미 밴드는 운동량과 수면시간을 측정하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진동으로 전화 알림도 받을 수 있다.

웨어러블 시장의 1위 업체는 스마트밴드를 판매하는 ‘핏빗’(Fitbit)이다. 올 2분기 핏빗은 총 440만대의 웨어러블 제품을 출하하며 시장 점유율은 24.3%였다.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박과 핏빗 차지제품


핏빗의 창업자는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박(James Park)이다.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한 제임스 박은 1998년부터 1년간 미국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서 일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2007년 핏빗을 공동 창업하고 웨어러블 기기 개발에 나섰다. 핏빗의 스마트밴드인 핏빗차지의 가격은 10만원 중반대로 입문용 웨어러블에 해당한다. 덕분에 핏빗은 웨어러블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뉴욕증시에 웨어러블 전문 제조사 최초로 상장했다. 핏빗 주식 2000만주를 보유하고 있는 제임스 박의 자산도 6억달러(한화 약 7200억원)까지 뛰었다.

잡스 ‘고집’ 뺀 팀 쿡의 ‘유연성’=스마트밴드 시장을 핏빗이 선점했다면, 스마트워치 시장은 애플이 장악하고 있다.

애플은 올 2분기 총 360만대의 웨어러블 제품을 출하해 시장 점유율은 19.9%를 기록했다. 가장 먼저 스마트워치를 선보였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14.3%) 대비 3.3%로 추락했다.

애플의 웨어러블 제품은 ‘애플워치’(Apple Watch) 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4월 출시 이후 이른바 ‘핏빗킬러’(Fitbit Killer)로 불리며 무섭게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애플워치는 고(故) 스티브 잡스에 이어 팀 쿡(Tim Cook)이 애플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후 선보인 야심작이다.



팀 쿡이 지휘한 애플워치는 전략적 유연성이 돋보인다. 소재와 색상, 시계줄 등을 다양화하면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는 수십 종에 이른다. 가격도 소재에 따라 349달러부터 1만7000달러까지 다양하다. 

사실 팀 쿡의 애플은 잡스의 ‘고집불통’ 경영 철학를 걷어내고, 사회와 적극 교감해 보다 부드러워지고 있다. 자신의 시각을 고집하기보다는 시장의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자세다. 

제품 개발에서도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4인치대 화면의 고집을 깨고, 대형 화면을 사용한 아이폰을 선보여 성공을 거뒀다.

특히 팀 쿡의 애플은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춰 현지화에도 공들였다. 아이폰 디자인에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중국에서 매출을 대폭 늘렸다. 

팀 쿡은 IBM과 컴팩을 거쳐 1998년 애플에 입사했다. 잡스 사망 6주 전인 2011년 10월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에서 CEO로 취임했다. 

경영보폭 넓힌 이재용의 ‘개방성’=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은 최근 사각형 디자인을 버리고 원형 스마트워치를 내놓으면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 전쟁에 이어 후계자들간의 웨어러블 전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와병이 길어지면서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웨어러블 사업에 접근해 왔다.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 인터넷, 가상현실(VR)과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등에 관심을 갖고,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양한 업체들과 협력해 왔다. 

평소 세부사항도 꼼꼼히 챙기는 ‘디테일 경영’으로 유명한 이 부회장이 웨어러블 사업에서 강조한 것은 ‘개방적 협력체제’이다. 

실제 그는 글로벌 시계 업체들과 웨어러블 사업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VR과 협업으로 기어VR을 만들어 냈다.

또 웨어러블 경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하드웨어와 스프트웨어에도 동시 진출하고 있다. 삼성은 최근 웨어러블기기 칩셋 제조업체인 미국의 이네다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유럽 최대 미디어그룹인 독일 악셀 슈프링어와 손잡고 웨어러블 제품 등에 적용할 새로운 뉴스 플랫폼도 선보인다.

애플워치가 사각형 스마트워치라는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않은 가운데 이재용의 삼성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한 개방적 플랫폼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삼성의 스마트워치 기어S2는 네모에서 동그라미로 디자인이 바뀌면서 아날로그 시계의 모습을 강조했다. 특히 기어S2에서는 이탈리아의 국보급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 디자인 협력도 진행해 디지털과 클래식의 조화가 잘 이뤄졌다는 평가다. 

기어S2에 적용된 삼성의 자체 운영체제(OS) 타이젠은 이전과 달리 더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타이젠 스마트워치는 그동안 삼성 갤럭시폰과만 연동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어S2는 스마트워치 생태계 확장을 위해 OS 벽을 허물고 안드로이드폰, 아이폰과도 연동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레이쥔 샤오미 창업자와 미밴드


▶‘원형의 역습’ 중국의 신흥 강호=중국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와 레노버도 웨어러블 기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국 업체들이 스마트워치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것은 스마트폰 이후 성장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의 30%를 소비하는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 2분기 스마트폰 소비가 줄었다.

반면 웨어러블 기기는 유일하게 성장하는 IT 시장이다. 지난해 1000만대 출하됐던 스마트워치는 2020년경 1억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밴드 ‘톡밴드’(talk band)를 출시한 바 있는 화웨이는 이달부터 자사의 첫 스마트워치 ‘화웨이워치’ 판매를 시작한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와 화웨이워치


샤오미와 함께 중국 스마트폰의 쌍두마차를 이끄는 화웨이는 통신장비에서 시작한 제조기술을 스마트폰에 이어 웨어러블 기기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워치는 고객의 요구에 맞게 디자인됐다. 원형 디자인에 베젤과 용두까지 구현한 클래식한 시계는 중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습이다.

실제 화웨이의 런정페이(任正非) 창업자가 강조해온 것은 ‘고객 중심주의’다.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던 중국에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로 성장한 화웨이는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고객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화웨이는 런정페이 회장이 1987년 중국 선전에서 설립한 통신장비 전문기업이다. 런정페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 당시 44세의 나이에 단돈 2만2000위안을 손에 쥐고 화웨이를 세웠다. 이후 화웨이는 27년만에 연매출 50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거듭났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도 이달 2세대 원형 스마트워치 ‘모토360’을 선보였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4위 기업인 레노버는 자국 기업인 화웨이·샤오미에 맞서 새로운 원형 스마트워치로 웨어러블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레노버의 창업자 류촨즈와 모토 360 2세대


레노버의 창업자 류촨즈(柳傳志)는 모토로라 인수 이후 스마트폰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워치로 반등을 노린다는 복안이다.

‘중국 IT계 대부’로 불리는 류촨즈는 1984년 중국과학원의 20만위안 투자를 받아,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레노버의 모회사 레전드홀딩스를 설립했다. 류촨즈는 20년 후인 2005년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레노버를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로 키워냈다.



출처: 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50909000010&sec=01-74-02&jeh=0&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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