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생긴 나. 사위가 생긴 부모님. 그를 바라보는 나.
여자친구가 생긴 0329.  그를 바라보는 나.

오랜만에 행복을 무겁게 바라본다.

첫번째 이야기

결혼하지 못할 것 같던 사랑하는 누나는, 누나를 사랑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만남의 과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남에서 결혼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누나의 인생을 바라본 나에게는 꽤나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었다.

아빠, 엄마가 보고싶어 전화를 했다. 매형과 함께 식사를 하고 웃으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참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갑자기 몰려드는 서운함, 외로움, 안도감, 감사함 
참 상반된 감정.

뭔가 이제는 내가 부모님께 더 해드리지 못하더라도, 누나와 매형이 해줄 수 있다는 안도감.
이제는 내가 드리지 못하는 행복을 부모님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사함.
반면, 왜 그렇게 그 순간이 서럽고 외로웠는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
두번째 이야기
0329와 그분의 여자친구와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 간 0329의 고생과 노력과 마음을 잘 알기에,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늘 하루만 바라 본 그분은 참 상냥하고, 친절하고, 밝고, 자상하며,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고 묵상 할 줄 아는 분으로 기억된다. 0329가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_
공통으로 느껴진 감정
매형과 누나, 부모님, 그리고 0329를 보며, 오늘도 행복을 무겁게 바라본다.
지나온 시간 동안의 아픔과 고통을 알기에 앞으로 행복하기에도 부족할 만큼 충분하게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어떻게 하면 행복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밀려든다.

나는 서울 생활을 '이민자', '방랑자'의 감정의 매인이 되어 하고 있다.
친한 분들이 있다고야 한들 여전히 서울은 나에게 잘못 걸으면 떨어지는 낭떨어지, 외줄타기의 공간이다.
아파서도 안되고, 회사를 그만둬서도 안되고, 삐끗해서도 안되고, 바르게 서야하며,
상냥해야하고, 원래의 내가 아닌 그들 혹은 상대방이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하는 곳이다.
진이 빠지지만 나는 책임질 일들이 있기에 그냥 살아가는 그러한 장소이다.

그런 나이기에 '행복하다.', '나답다.' 이러한 감정은 사치에도 가깝기도 하다.
나이가 한살 더 먹다보니, "나는 행복하기에 충분한 사람인가?", "나는 안정감을 찾으로 가기에 충분한 사람인가?",
"나는 그냥 이대로 책임질대로 책임지다가 사라지는게 맞겠다." 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그냥 나의 모습,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래본다.

그냥, 오늘 한번 더 무겁게 행복을 바라보다 느낀 개소리를 이렇게 써봤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