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社 CEO에서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온 제임스 다이슨 창업주

"저는 그저 제대로 움직이는 기계(machine)를 만들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름답게 포장된 제품(product)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좀 더 좋은 성능을 가진 가전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임스 다이슨(Dyson·68) 다이슨사 창업주는 3년 전 최고경영자(CEO)라는 직함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왔다.

다이슨社 CEO에서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온 제임스 다이슨 창업주
 제임스 다이슨 창업주

'날개 없는 선풍기'와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등을 개발해 '영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 같다. 시골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여왕보다 더 많은 땅을 가진 억만장자가 됐고,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그러던 그가 현재 "가장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며 연구실에서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CEO가 돌연 엔지니어로 복귀한 뒤 다이슨 실적은 더 좋아졌다. 올 상반기 다이슨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다이슨社 CEO에서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온 제임스 다이슨 창업주
 날개 없는 선풍기 겸 공기청정기(좌측)와 진공청소기(우측)에 모인 먼지를 제거하는 모습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맘스버리라는 작은 도시의 다이슨 본사에서 제임스 다이슨 '수석 엔지니어'를 만났다. 2층에 있는 다이슨의 사무실은 다른 직원들이 한눈에 보이는 통유리로 된 방이었다. 지나다니는 직원들도 안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무실 곳곳에는 실험 중인 프로토타입(시제품)이 널려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다이슨은 개발 중인 진공청소기의 성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바닥에 직접 시리얼 한 줌, 밀가루 한 줌을 뿌리더니 직접 청소기를 들고 시연했다. 깨끗해진 바닥을 가리키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정말 좋은 제품이지요? 이렇게 청소를 잘해야 제대로 된 진공청소기라고 할 수 있지요."

마케팅은 눈속임(gimmick)일 뿐… 브랜딩도 필요 없어

다이슨社 CEO에서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온 제임스 다이슨 창업주
 진공청소기로 천장을 청소하는 모습

―경영자에서 다시 수석 엔지니어가 되셨습니다.

"저는 늘 엔지니어였고 연구할 때 가장 즐거운 사람입니다. 수석이라고 굳이 불리는 것도 민망하네요. 다른 엔지니어들과 동등하게 연구실에서 제품 개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 가장 자신 있고,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가 CEO보다는 엔지니어로서 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겁니다. 사람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기술 자체가 좋고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엔지니어는 모든 직군 가운데 가장 행복 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매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지요. 조직의 구성원이 각자 가장 원하는 팀에서 즐겁게 일할 때 가장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개발에 참여할 만큼 제품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습니다. 특별한 마케팅 전략은 없으신가요?

"저는 마케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마케팅은 포장 또는 술책에 지나지 않다고 봐요. 브랜딩이란 말도 사실 좋아하지 않아요. 소비자가 물건을 사는 것은 필요한 기능을 얻기 위해서지 물건 한편에 쓰인 브랜드 이름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다이슨의 물건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청소기가 필요한 것이에요. 쉽게 말해서 진공청소기는 먼지를 잘 빨아들이고 청소만 잘하면 됐지 어느 브랜드에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요즘 소비자들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 아시나요? 과거엔 입소문만으로 어느 제품이 좋다고 추천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전문적으로 제품별 기능에 대해서 분석하기도 합니다. 여러 회사 진공청소기를 사용해본 뒤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도 하지요. 요즘 소비자들은 상당히 현명해졌습니다. 별반 다르지 않은 기능인데 마케팅으로 화려하게 포장했다고 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는 마케팅에 많은 투자를 하지요. 이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기보다 마케팅이 쉽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R&D에 대한 투자는 보통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초조해지기 쉬워요. 10년이고 15년이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잦고 아예 기약이 없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당장 올해 또는 내년 매출과 직결되기는 어렵지요.

히트 광고 하나만으로 당장 다음 날 매출이 늘어나는 마케팅은 필수적인 경영 전략으로 알려졌지만, 마케팅에 기반을 둬 성장한 회사는 결코 롱런할 수 없습니다. 고객들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제품을 과대 포장한 것에 불과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지속적인 판매는 결국 물건의 유용한 기능 덕분이고, 이 때문에 R&D만이 유일한 장기적인 성공 전략입니다."

"혁신(innovation)이라는 표현 오·남용되고 있다"

―다이슨은 늘 최고의 혁신 기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저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혁신이라는 단어를 오·남용하는데, 이 점이 저를 매우 짜증 나게 하거든요. 진정한 R&D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품의 기술력을 과대 포장하기 위해 혁신이라는 말을 앞세우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혁신이란 말은 단순히 마케팅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혁신보다는 '발명(invention)'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요즘 발명가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데, 저는 스스로를 발명가라고 부르길 좋아합니다. 발명은 기술적 도약을 이용해 기존의 방식을 바꾸고 기존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지요. 혁신처럼 대단하게 들리지 않지만, 제가 하는 일은 새로운 발명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품'이 아닌 '기계'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가요?

"네 맞아요. 저는 제품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지요. 제품은 다소 상업적인 의미가 짙어요. 한때 제품은 제조업에서만 쓰던 용어인데 지금은 보험 회사도 소프트웨어 회사도 제품이라는 말을 씁니다. 물리적으로 물건을 만들지 않는 산업군에서도 서비스를 제품이라고 부르면서 이 단어 자체가 오용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개발하는 물건을 단순히 팔기 위한 제품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소비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제품을 개발하면서 첫째로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이지만, '어떻게 해야 팔릴까'보다는 '어떻게 해야 기능을 개선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래서 기계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기술과 연구가 더해져 나온 물건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최근 대중의 관심은 제조업보다는 디지털 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네, 다소 속상한 부분이지요. 가장 큰 문제는 정치·사회적으로 대체에너지 등 더 중요한 문제보다는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혁신에서만 활발한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조업과 관련된 공학, 그리고 발명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다소 약해진 것 같아요. 많은 인재들도 현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디지털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발명가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야 합니다. 제조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엔지니어지요. 발명은 창의적인 엔지니어링과 행운이 합쳐진 결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끊임없는 질문에서 나옵니다."

다이슨 본사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제품은 제대로 작동할 때 가장 아름답다(Something is truly beautiful if it works properly)'라고 쓰여 있다. 제품의 기능이 최우선이라는 철학이 담긴 문장이다.

―로비 벽면의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요즘 애플 제품이 잘 팔리는 것처럼 디자인이 예쁜 게 중요하지 않나요?

"아니에요. 성능이 최우선입니다. 제대로 먼지를 흡입하지 못하는 청소기가 예쁘다고 무슨 소용일까요? 이 때문에 엔지니어는 제품을 만들 때 기능적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야지,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모서리 각도를 바꾸고, 로고를 달리하고, 다양한 색으로 칠하는 건 피상적인 변화일 뿐이지 제가 추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겉모습은 결코 발명의 일부가 아닙니다.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고 이것이 엔지니어가 할 일입니다.

디자인에 대한 제 원칙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입니다. 기능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지요. 최상의 성능을 제공하는 제품을 구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디자인이 나오게 됩니다. 저에게 좋은 디자인은 겉모양이 아니라 그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제품을 팔 때는 유머와 배짱이 필요해

―그래도 결국은 팔아야 할 것 아닌가요? 개발에 성공한 제품은 어떻게 팔아야 좋을까요?

"저는 처음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개발에 성공하고 나서,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청소기를 들고 소비자 하나하나를 찾아갈 순 없는 노릇이지요. 우선은 통신 판매로 주문하는 카탈로그에 제 제품을 실어야 했습니다. 카탈로그 담당자를 찾아가 저의 제품을 설명했는데, 그는 '흥미롭네요. 하지만 왜 내가 후버(Hoover)나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제품을 빼고 당신의 제품을 넣어야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냐면 당신네 회사의 카탈로그가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지요.'

그는 웃으며 제가 건방지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모를 다이슨의 제품을 실어주기로 했습니다. 한 개 카탈로그에 제품이 실리자, 다른 카탈로그는 자연스럽게 다이슨 제품을 넣더라고요. 그리고 하나의 상점에서 여러 상점으로 판매망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21/20150821019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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